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405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2월 5일 07시 28분 등록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인 김화영 선생은 젊은 시절 공민교육대라는 군사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군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채로 군에 입대한 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때때로 문맹인 훈련생들이 지인들이 보낸 편지를 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군인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가 보낸 편지를 대신 읽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을 김화영 선생은 <바람을 담는 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더니 백지 위에 손바닥을 펴서 짚은 채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손의 그림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밑에는 어렵사리 판독한 결과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라는 뜻으로 읽혀지는 애틋한 글이 딱 한 줄 씌어져 있었다.”

 

이 일화를 보면서 내 마음에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오래 된 교회 정문 앞 계단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럽의 옛 도시들이 그렇듯이 교회 앞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광장을 보다가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높은 탑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을 보았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여유로움은 처음 느껴보는 여행의 맛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엽서를 하나 썼거든요. 결혼하기 전 아내에게 쓴 것입니다. 이 엽서를 쓰게 된 계기도 있습니다. 교회 앞 계단에서 나는 구본형 사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과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동안, 사부는 노트를 펼치고 그 위에 엽서를 놓고서 뭔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마 낯선 여행지에서 사랑에게 보내는 엽서였을 겁니다. 내 눈빛을 느낀 사부가 말했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와 누군가에게 이렇게 엽서를 보내는 게 좋아. 이번 여행도 막바지이니 이 엽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도착하겠지. 그래도 괜찮아. 그대도, 너 자신에게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봐.”

 

sw20130205-1.jpgsw20130205-2.jpg

 

2011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중에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행지에서 엽서 같은 것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쓰는 순간 이것 역시 여행의 묘미임을 알았습니다. 여행지에 가면 거의 모든 상점에서 주변의 유적지나 자연 풍광을 담은 사진엽서를 팝니다. 나는 이 엽서를 왜 그리 많이 파는지, 사람들이 이걸 왜 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때 이후 여행을 가면 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여름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아내와 나는 각자 3장의 엽서를 썼습니다. 하나는 서로에게, 또 하나는 스스로에게, 마지막 한 장은 그 순간 떠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엽서. 해발 3454m에 위치한 스위스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내가 보낸 세 번째 엽서의 수신인은 구본형 사부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부가 떠올랐고, 여행지에서 엽서 쓰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적었습니다.

 

손글씨로 엽서나 편지를 쓸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화나 이메일, 문자가 아닌 손에 펜을 잡고 써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써야 나오는 내 안의 것들이 있고, 편지라는 통로를 거쳐야 더 깊이 전할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입니다.

 

sw20130205-3.jpg

김화영 저, 바람을 담는 집, 문학동네, 1996년 7월

 

* 안내 : 책쓰기강좌 안내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한명석이 책쓰기강좌 4기를 모집합니다.

언제고 내 책 한 권 꼭 쓰고 싶었던 분, 혼자 하느라 지치거나 결정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분, 인생2막에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녀는 이번에 “당신을 위한 직장은 없다, 플랜B"라고 하는 수강생들의 공저를 성사시켰으며, “저술, 강의, 코칭”을 주제로 하는 공저팀도 모집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http://www.bhgoo.com/2011/451725 을 방문하세요.

 

* 안내 : ‘크리에이티브 살롱9’ 목요 아카데미 2월 강좌 소개

<크리에이티브 사롱 9>에서 인문학을 만나는 목요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월 강좌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숙명여자대학교 권성우 교수가 진행합니다. 커리큘럼과 참가자 모집 등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20130129-1.jpg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