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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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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5일 07시 28분 등록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인 김화영 선생은 젊은 시절 공민교육대라는 군사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군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채로 군에 입대한 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때때로 문맹인 훈련생들이 지인들이 보낸 편지를 그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군인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가 보낸 편지를 대신 읽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을 김화영 선생은 <바람을 담는 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냈더니 백지 위에 손바닥을 펴서 짚은 채 각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투르게 줄을 그은 손의 그림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밑에는 어렵사리 판독한 결과 ‘저의 손이어요. 만져주어요’라는 뜻으로 읽혀지는 애틋한 글이 딱 한 줄 씌어져 있었다.”

 

이 일화를 보면서 내 마음에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오래 된 교회 정문 앞 계단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럽의 옛 도시들이 그렇듯이 교회 앞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광장을 보다가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높은 탑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을 보았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여유로움은 처음 느껴보는 여행의 맛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엽서를 하나 썼거든요. 결혼하기 전 아내에게 쓴 것입니다. 이 엽서를 쓰게 된 계기도 있습니다. 교회 앞 계단에서 나는 구본형 사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지중해의 부드러운 바람과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동안, 사부는 노트를 펼치고 그 위에 엽서를 놓고서 뭔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마 낯선 여행지에서 사랑에게 보내는 엽서였을 겁니다. 내 눈빛을 느낀 사부가 말했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와 누군가에게 이렇게 엽서를 보내는 게 좋아. 이번 여행도 막바지이니 이 엽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도착하겠지. 그래도 괜찮아. 그대도, 너 자신에게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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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이탈리아 여행 중에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행지에서 엽서 같은 것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쓰는 순간 이것 역시 여행의 묘미임을 알았습니다. 여행지에 가면 거의 모든 상점에서 주변의 유적지나 자연 풍광을 담은 사진엽서를 팝니다. 나는 이 엽서를 왜 그리 많이 파는지, 사람들이 이걸 왜 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때 이후 여행을 가면 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여름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아내와 나는 각자 3장의 엽서를 썼습니다. 하나는 서로에게, 또 하나는 스스로에게, 마지막 한 장은 그 순간 떠오른 누군가에게 보내는 엽서. 해발 3454m에 위치한 스위스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내가 보낸 세 번째 엽서의 수신인은 구본형 사부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부가 떠올랐고, 여행지에서 엽서 쓰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적었습니다.

 

손글씨로 엽서나 편지를 쓸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화나 이메일, 문자가 아닌 손에 펜을 잡고 써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써야 나오는 내 안의 것들이 있고, 편지라는 통로를 거쳐야 더 깊이 전할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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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저, 바람을 담는 집, 문학동네,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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