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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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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7일 12시 24분 등록

어제 오후 한 나절 여우숲 탐방로에 눈을 쓴 뒤 아궁이에 불지피며 어둠을 맞았습니다. 늦은 저녁 밥 차려 먹고 잠깐 눈을 붙인다고 누웠는데, 안놀리던 몸을 모처럼 대차게 놀린 탓인지 그대로 잠에 취했습니다. 침상으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에 눈을 뜰 만큼 늦잠을 잤습니다. 오늘 이렇게 늦은 편지를 쓰게 된 사연입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어제 그렇게 쓸어 되찾아 놓은 흙바닥 위로 또 하얀 눈이 그득 쌓여 있습니다. 하하... 눈 쓰는 일은 나의 몫, 눈 내려주는 일은 하늘의 몫! 눈 덮인 숲 풍경 참 좋습니다.


어제 오전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대뜸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표현에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그분은 성정이 곧은 분으로 정의감에 가득 찬 분입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맡고 있는 마을 공동체 일을 훼방하는 사람이 있는데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도가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의감에 가득 찬 그분은 공동체를 위해서, 당신이 속한 마을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인다’는 표현은 그의 생명을 끊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그토록 나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제거하고 싶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그분의 분노에서 나를 보았습니다. 나 역시 분노가 많은 사람이며 그 분노가 겨냥하고 있는 것의 핵심은 그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대의가 아닌 사익을 위해 지배하려는 못된 힘을 향해 왔습니다. 이십대에는 나의 분노가 그분 못지않게 과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지향하는 신념이 옳은지 그른지는 섵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공동체를 위한 일을 맡고 있는 그분의 심정적 분노와 그 패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언해 드렸습니다.


칼로 나를 해하려 하는 자에게 칼을 뽑아 쟁(爭)하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다. 쟁(爭)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기려고 쟁하지만, 정작 온전히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외상 혹은 내상을 깊게 입고 만다. 그 후유와 상처를 평생 끌어안고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래서 생명들은 모두 쟁(爭)을 조심하고 또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대의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쟁은 대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쟁은 공동체에 소속된 대중을 어떤 형태로든 물고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칼로 쟁하기 보다 정직한 명분으로 쟁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가 모를 것 같지만, 그들은 정직한 명분을 알고 있다. 당장의 이해관계나 호도된 여론 때문에 대의를 저버리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쓰레기들이 구사하는 명분과 절차를 저버릴 수 있는 쟁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분이 물었습니다. ‘당장의 이해관계나 호도된 여론 때문에 대의를 저버리는 선택을 다수가 한다면 어찌 해야 하나?’ 나는 여태 나를 위로하며 살고 있는 나의 관점을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중과 공동체의 운명이요 팔자다. 지금 그 공동체를 이끄는 자들이 감내해야 할 운명이기도 하다.’ 나의 이런 생각은 숲이 깊어져 가는 법칙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산사태가 난 자리, 벌거숭이 산에 날아온 정의로운(?) 소나무 씨앗이 그 숲을 온통 소나무 숲으로 바꾸려 한다고 하더라도 그 숲은 당장 소나무 숲으로 바뀌지 못합니다. 칡덩굴과 또 다른 가시덤불들이 그 소나무의 모색을 위협하며 뻗어오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는 누군가를 타고오르며 성장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쟁(爭)에 취약합니다. 대신 소나무는 그 취약함을 더 부지런히 자라는 것으로 피워냅니다. 혹시 그에게도 분노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솔방울을 맺을 꽃으로 피워내는 데 몰두합니다. 더 많은 씨앗이 더 너른 영역에서 함께 자라날 수 있도록 씨앗을 날리는 일에 주력합니다.


그분은 위로를 얻은 듯 했습니다. 칼을 드는 쟁(爭)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척박한 시골 공동체의 의식수준을 자신이 감내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오후 내내 나는 눈을 쓰며 그분의 분노가 꽃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대에게도 분노가 있다면, 그대 분노 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대 분노 꽃이 될 때 까지 그대 운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IP *.20.2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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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8 13:18:09 *.169.188.35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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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1 12:06:16 *.171.37.210

새해의 덕담,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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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13:28:43 *.60.85.160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분노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한가봅니다.. 오늘은 꽃의 밑그림을 한번 그려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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