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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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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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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 07시 19분 등록

나는 책을 빌려보지 않습니다. 줄치고 책 모서리를 아래위로 접으면서 읽기 때문입니다. 읽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 포만감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책에 대한 욕심은 책 읽는 공간에 대한 욕심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십년쯤 전부터 서재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방을 꿈꿨습니다. 작년 9월 결혼을 하며 방 하나를 서재로 삼으면서 꿈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이 방의 가장 넒은 벽을 책으로 채웠습니다. 아직은 책장에 책을 채우는 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자라듯 책들이 하나둘 쌓여 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쪽 벽도 책으로 채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십년쯤 지난 후에는 지금과 다른 공간을 갖고 싶습니다. 빈 방. 작은 좌식 책상과 방석, 좋아하는 책과 만년필과 노트 하나씩만 있는 공간입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공간, 필요한 몇 가지만 살아 있는 공간, 자유와 고독으로 호흡하는 방을 꿈꿉니다. 김화영 선생의 <바람을 담는 집>에서 아래 구절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습니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나의 고향에는 존경하는 한학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고향에 갈 때마다 인사차 들르곤 했는데 늙으신 분이라 기동이 어려워 대개 방에 누워계시거나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생활이었다. 나는 그분의 방을 좋아했다. 남향받이라 볕이 밝았다. 방 안에는 정확하게 목침 하나, 놋재떨이 하나, 장죽 하나, 놋요강 하나, 그리고 펼쳐진 채 있는, 그러나 매번 다른 한서 한 권, 그리고 물론 간간이 방 안의 햇살을 가볍게 흔드는 노인의 기침소리. 그것이 전부였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 그 헐벗은 방이 그분의 내면 풍경 같아서 좋았다. 거기에는 정신의 긴장과 휴식이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에 재미가 붙으면서 호기심에 끌려 손에 잡는 책이 늘고, 독서는 성찰과 탐구, 일종의 명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내게 책을 읽는 건 이 모든 것의 혼융입니다. 독서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바람과 그것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강도는 조금씩 줄어드는 듯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전히 어떤 목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면서도, 언젠가는 호흡하듯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람을 담는 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면서 내 가슴은 설렜습니다.

 

“한 번도 ‘一家를 이룬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없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여겨 본 적도 없다. 그 집은 너무나 무겁고 삼엄하다. 그런 집을 지어 누구를 가둘 것인가. 그러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기이한 집짓기를 꿈꾼다. 반칸은 청풍이요 반칸은 명월인 집, 가볍고 투명하여 떠남이 곧 휴식이고 안식이 곧 떠남인 집, 그런 집을 짓는 일이라면 십년이 아니라 일생을 다 바치고 싶다.”

 

언젠가 내 주위 가득한 책들을 떠나보내고 싶습니다. 읽은 것을 존재의 양식으로 소화시키고 글로 녹여냄으로써. 과정이 목적인 여행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한가롭게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정을 목적으로, 여정 자체를 보상으로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김화영 교수는 언젠가 떠난 아일랜드 여행의 끝 무렵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자동차를 빌렸던 회사를 찾아가 차를 돌려주고 나니 나무 한 그루 없이 뙤약볕만 내려쪼이는 마당 한가운데 여행가방 하나만이 내 앞에 휑하니 남았다.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던 그 초원과 파도 높은 바다와 늪 그리고 돌담길은 더디 가고 동그마니 남은 가방 하나. 그것이 나의 여행과 삶이 이른 곳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그 가방의 손잡이도 놓아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허무가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야 멀리 갈 수 있음을 나는 안다.”

 

<바람을 담는 집>은 심심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래서 읽다가 딴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 기분과 생각이 좋습니다. 마음은 여유롭고 일상의 여백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건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 마을을 둘러보는 것과 같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고, 또 그런 그리움이 마음에 번집니다. <바람을 담는 집>은 꿈속에서 봤음직한 골목길을 산책하는 느낌도 줍니다. 낯선 곳에서 맛보는 일탈, 그런 길 위에서 곧잘 만나게 되는 설렘과 적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자유와 고독으로 들숨과 날숨 쉬듯 이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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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저, 바람을 담는 집, 문학동네, 1996년 7월

 

* 안내 : <치유와 코칭의 백일간 글쓰기> 12기 모집 안내

<유쾌한 가족 레시피>의 저자 정예서 연구원이 <치유와 코칭의 백일간 글쓰기> 12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본 과정은 100일간 매일 쓰기와 도서 리뷰, 오프 세미나 등 밀도 있고 풍성하게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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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 : 구본형의 신간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이 출간 되었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책 소개글’

 

“나는 볼핀치의 ‘그리스 신화’ 보다 더 좋은 책을 쓰려고 했다. 그래서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물결치는 긴머리결 같은 장편처럼 신화들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였다. 이 이야기들을 모르고는 서양 고전을 이해 할 수 없고,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위대함이 시작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변화란 내 안의 별을 발견하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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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34.1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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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09:36:29 *.210.235.50

점점 글에서 유부남의 노리끼리한 향취가 짙어지는군... 글을 다 읽고 나니 호흡이 착! 가라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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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7:18:05 *.216.38.13

이 책이 절판되어서 어렵사리 헌책방을 뒤져 구해 읽은 기억이 새록새록...

까뮈의 <이방인>을 강렬하게 번역한 지은이가 비쳐주었던 뜨거운 태양의 진내가 겨울에 풍겨난다.

이 책,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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