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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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대동강물도 녹인다는 우수가 다샛 뒤로 다가섰지만, 여우숲에는 아직 쌓인 눈이 그득합니다. 엄동설한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품고 있는 ‘바다’ 식성이 얼마나 괄괄한 지 밥과 사료를 대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쌓인 눈 때문에 차가 올라올 수 없어서 사료를 지게로 져 올린 게 벌써 세 번 째입니다. 요즘 바다는 밥을 조금만 늦게 줘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피하고 싶을 만큼 너무나 간절해 집니다. 저 눈빛이 바로 모든 어미들의 마음이니 어쩌겠습니까? 눈이 녹을 때 까지는 계속 지게질을 해야 겠지요.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설 명절을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봄이 꿈틀대는 느낌을 나의 피부가 먼저 느낍니다. 마당에 심은 설중매 매화나무와 산수유, 그리고 숲 속 생강나무 꽃 눈에서도 봄 기운을 가득 느끼는 즈음입니다. 겨우내 나의 방 안에서 더부살았던 무당벌레들도 서서히 밖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한낮 중천의 햇살이 창으로 스밀 때면 한 두 마리의 무당벌레가 꼭 유리 창에 붙어서 이른 봄 햇살을 만끽하면서 출구를 찾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오두막에 살기 시작한 첫 해의 이 즈음에는 하루에 수 백 마리의 무당벌레를 잡아 밖으로 내보내 주었는데, 지난 해에 지네에게 물린 이후 곳곳에 틈을 메운 탓인지 함께 방 안에서 겨울을 건너는 무당벌레 숫자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겨울을 무사히 견뎌낸 생명들은 모두 그렇게 바깥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꽃눈은 그 망울을 터트려 바깥으로 제 속을 뵈려 하고, 무당벌레처럼 성충의 형태로 겨울을 건넌 녀석들 역시 갑옷으로 감싸 숨긴 날개를 따사로운 햇살을 향해 펴드는 일이 많아집니다. 눈으로 덮인 숲 바닥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농작물인 산마늘은 벌써 열흘 전부터 제 움을 틔우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폭설과 혹한을 견뎌낸 냉이나 개망초 같은 두 해살이 풀들도 그렇습니다. 겨우내 잘 지켜낸 그들의 뿌리잎에 생장의 기운이 가득 느껴집니다.
땅 속도 사정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0℃ 이하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렁이들은 이 지역의 동결선인 지하 1m 이하에 굴을 파고서 겨울을 건넜을 것입니다. 토양이나 미기후 여건에 따라서는 최대 8m 깊이의 땅 속에서 겨울을 건너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도 땅 속으로 전해져 내려가는 땅의 온도를 느끼며 곧 상승을 준비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들 뿌리 주변, 그러니까 대략 지하 15~35cm 주변 까지 상승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씩 느껴지는 봄 기운과, 그에 따른 생명들의 변화를 느끼며 요즘 숲을 걷는 재미가 참 찰집니다. 해마다의 봄은 저들 때문에 찾아드는 것이 분명하구나 느끼게 됩니다. 겨울을 견디고 새끼를 키워낸 바다가 있어 봄 숲에는 컹컹 개짖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고, 혹한 속에서도 제 꽃눈과 잎눈, 뿌리잎을 지켜낸 나무와 풀들이 있어 눈부신 날이 열리는 것이고, 깊은 땅 속으로 꺼졌다가 다시 상승하는 땅 속 생명들이 있어 흙 속의 길도 풍성해 지는 것이고......
그렇게 겨울을 견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만으로도 위대하고, 생태계 전체에서도 그 인내는 위대합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겨울을 견뎌낸 생명들처럼 그렇게 소박한 위대함으로 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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