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474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3년 2월 14일 00시 25분 등록

얼어붙은 대동강물도 녹인다는 우수가 다샛 뒤로 다가섰지만, 여우숲에는 아직 쌓인 눈이 그득합니다. 엄동설한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품고 있는 ‘바다’ 식성이 얼마나 괄괄한 지 밥과 사료를 대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쌓인 눈 때문에 차가 올라올 수 없어서 사료를 지게로 져 올린 게 벌써 세 번 째입니다. 요즘 바다는 밥을 조금만 늦게 줘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피하고 싶을 만큼 너무나 간절해 집니다. 저 눈빛이 바로 모든 어미들의 마음이니 어쩌겠습니까? 눈이 녹을 때 까지는 계속 지게질을 해야 겠지요.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설 명절을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봄이 꿈틀대는 느낌을 나의 피부가 먼저 느낍니다. 마당에 심은 설중매 매화나무와 산수유, 그리고 숲 속 생강나무 꽃 눈에서도 봄 기운을 가득 느끼는 즈음입니다. 겨우내 나의 방 안에서 더부살았던 무당벌레들도 서서히 밖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한낮 중천의 햇살이 창으로 스밀 때면 한 두 마리의 무당벌레가 꼭 유리 창에 붙어서 이른 봄 햇살을 만끽하면서 출구를 찾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오두막에 살기 시작한 첫 해의 이 즈음에는 하루에 수 백 마리의 무당벌레를 잡아 밖으로 내보내 주었는데, 지난 해에 지네에게 물린 이후 곳곳에 틈을 메운 탓인지 함께 방 안에서 겨울을 건너는  무당벌레 숫자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겨울을 무사히 견뎌낸 생명들은 모두 그렇게 바깥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꽃눈은 그 망울을 터트려 바깥으로 제 속을 뵈려 하고, 무당벌레처럼 성충의 형태로 겨울을 건넌 녀석들 역시 갑옷으로 감싸 숨긴 날개를 따사로운 햇살을 향해 펴드는 일이 많아집니다. 눈으로 덮인 숲 바닥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농작물인 산마늘은 벌써 열흘 전부터 제 움을 틔우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폭설과 혹한을 견뎌낸 냉이나 개망초 같은 두 해살이 풀들도 그렇습니다. 겨우내 잘 지켜낸 그들의 뿌리잎에 생장의 기운이 가득 느껴집니다.


땅 속도 사정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0℃ 이하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렁이들은 이 지역의 동결선인 지하 1m 이하에 굴을 파고서 겨울을 건넜을 것입니다. 토양이나 미기후 여건에 따라서는 최대 8m 깊이의 땅 속에서 겨울을 건너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도 땅 속으로 전해져 내려가는 땅의 온도를 느끼며 곧 상승을 준비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들 뿌리 주변, 그러니까 대략 지하 15~35cm 주변 까지 상승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씩 느껴지는 봄 기운과, 그에 따른 생명들의 변화를 느끼며 요즘 숲을 걷는 재미가 참 찰집니다. 해마다의 봄은 저들 때문에 찾아드는 것이 분명하구나 느끼게 됩니다. 겨울을 견디고 새끼를 키워낸 바다가 있어 봄 숲에는 컹컹 개짖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고, 혹한 속에서도 제 꽃눈과 잎눈, 뿌리잎을 지켜낸 나무와 풀들이 있어 눈부신 날이 열리는 것이고, 깊은 땅 속으로 꺼졌다가 다시 상승하는 땅 속 생명들이 있어 흙 속의 길도 풍성해 지는 것이고......

그렇게 겨울을 견딘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만으로도 위대하고, 생태계 전체에서도 그 인내는 위대합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겨울을 견뎌낸 생명들처럼 그렇게 소박한 위대함으로 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IP *.20.202.74

프로필 이미지
2013.02.15 13:46:19 *.169.188.35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끝자락에

걸어서 출근하는 길에

뺨을 스치는 공기의 결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아직은 꽃샘추위도 남아있을 것이고

작년처럼 봄과 함께 여름이 한꺼번에 올지 알지 못하지만

바람결이 변하고 있다는 것..

 

끝나지 않을 것 같아보여도

영원할 것만 같아도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16 신의 손 한 명석 2015.11.11 1420
2015 감응, 마음은 어지럽고 잠은 오지 않는 밤 김용규 2015.11.13 1433
2014 스물아홉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대기만성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13 1468
2013 먹고 살려면 書元 2015.11.14 1319
2012 또 하나의 빈곤 연지원 2015.11.16 1513
2011 1등보다 3등이 더 행복한 이유 차칸양(양재우) 2015.11.17 1446
2010 우리 모두 <양화대교> file 한 명석 2015.11.18 1443
2009 관광객 말고 여행자로 살기 김용규 2015.11.19 1347
2008 서른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돈과 행복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20 1580
2007 두 나그네를 그리며 연지원 2015.11.23 1204
2006 은행나무가 춤을 춘다 연지원 2015.11.23 1464
2005 분노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 차칸양(양재우) 2015.11.24 1441
2004 그런 날이 오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 김용규 2015.11.26 1323
2003 서른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SNS 활동 재키제동 2015.11.27 1540
2002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書元 2015.11.28 1296
2001 정말로 거저먹기의 글쓰기 연지원 2015.11.30 1438
2000 항상 제자리만 맴도는 당신에게 차칸양(양재우) 2015.12.01 1612
1999 이 삭막함을 어찌 할까요? 한 명석 2015.12.02 1453
1998 당연함을 비틀어보는 질문 김용규 2015.12.03 1366
1997 서른두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꿈 재키제동 2015.12.04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