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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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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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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6일 07시 53분 등록

스물아홉 살 무렵 나는 꿈 하나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나를 위한 서재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10년이 지나 신혼집의 방 하나를 서재로 삼으면서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마음 가는 대로 꾸몄습니다. 서가는 관심사와 마음 속 영웅들에 대한 책으로 채우고, 공간 곳곳에 좋아하는 물건들을 두었습니다. 그렇게 서재는 나의 작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윤광준 선생의 <내 인생의 친구>를 읽으며 나는 미소 지었습니다. 그 책에서 자신의 ‘작업실’을 일구는 과정과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수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련한 작업실의 이름은 ‘비원’입니다. 처음에는 ‘비원(秘苑)’인 줄 알았는데 작업실의 위치가 지하1층(B1)이라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작업실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작업실은 상상의 공간이어야 한다. 여백을 만들어 채워 넣어야 할 것을 떠올리고 생각을 고이게 할 틀이 필요하다. 맛난 음식이 담길 멋진 그릇의 존재는 여유와 사치가 아니다. 원하는 것은 훌륭한 공간이 아니다. 무슨 짓을 해도 용납되는 해방과 차단의 세계, 나만의 우주가 필요했다.”

 

나는 매일 서재에서 독서 여행을 떠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마을을 탐방하듯 책을 읽습니다. 유물이나 유적지,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걸 즐기지만 좁은 골목길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입맛을 다십니다. 뒷골목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있고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으며 하이라이트가 아닌 소소한 것들에서 느낄 수 있는 멋이 있습니다. 서재에서 나는 여행자이고 하나둘 쌓이는 책은 여행의 축적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을이 늘어나고 낯선 도시가 더해지면서 서재는 점점 커집니다. 서재는 세상입니다. 나는 정신적 우주를 품은 작은 공간을 꿈꿉니다.

 

윤광준 선생은 작업실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정성 들여 꾸몄습니다. 그는 “작업공간은 각종 사물로 표현된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업실 전체 공간은 캔버스였고 개별적 소품은 재료였다. 막힌 벽에는 마음의 창문을 냈다. 창문 너머에는 꽃을 심어 하늘과 맞닿게 했다. 그 대항면에는 눈 내리는 오대산 사진을 걸었다. 여백의 공간에는 기괴한 서체의 족자로 수호신을 삼았다. 사면이 막힌 한쪽 벽면에는 꽃이 피었고 한쪽에는 눈이 내렸다. 우주를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의 몫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서재에 아무 물건이나 갖다 놓지 않습니다. 필기구, 메모지와 공책, 액자, 사진, 그림, 달력 등 모두가 내게 특별한 것입니다.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소나무 가지와 송방울 4개, 단풍잎 3장과 대나무 접시 같은 물건은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익숙해지는 이 물건들은 독서 여행을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홀로 떠나는 낯선 여행길에 함께하는 익숙한 도구들은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이 물건들은 여행의 비밀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친구입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서재에서 보냅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일을 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꿈을 꾸는 무대도 이곳입니다. 서재는 나와 함께 하는 호흡하는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나의 의식적인 행동과 무의식적인 행동 모두 이곳에 흔적을 남깁니다. 서재 안의 물건들은 삶의 친구들입니다. 내 마음의 응어리를 알고 비밀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듯이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도 관계를 형성합니다. 인간관계처럼 이 관계도 세월과 함께 의미가 깊어지고 사연이 흐릅니다. 그 관계가 특별하기 위해서는 애정과 정성을 쏟아야 함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게 행복이란 작은 기쁨과 감탄이 흐르는 일상입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일상을 예술로’가 나의 모토입니다. 일상은 공간과 물건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행복이 피어나는 자리는 일상적 공간이고, 그 공간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기쁨과 감탄은 공간 속에서 나와 삶의 친구들의 어울림의 과정입니다. 삶은 공간과 물건과 함께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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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저, 내 인생의 친구, 시공사,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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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매월 1인 지식기업가를 위한 자기경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4월 주제는 ‘1인 기업 강사의 핵심역량, 강의력’이고, 강사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의 저자이자 명강사인 이희석 연구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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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6 09:02:54 *.30.254.29

2008년이었을거야., 윤광준 선생의 비원에서

사부님과 남도 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며, 

오디오에서 나오는 멋진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새록 새록..

집이 좁아서 서재가 없거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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