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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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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23시 34분 등록

 

여우숲 주차장 푯말에는 차 세우고 걷는 기쁨, 여기서부터 누리세요라고 써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권유를 따라 제법 긴 경사로의 산길을 걸어 올라옵니다. 하지만 짐이 많은 경우나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혹은 몸이 불편한 분들은 차를 가지고 올라옵니다. 그렇게 올라오신 분들 중에 5할은 이곳은 차가 다닐 곳이 못된다고, 제발 포장을 하든지 길을 좀 더 매끈하게 손보든지 하라고 당부하거나 투덜댑니다.

 

그런 분들의 불평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구불구불하고 또 울퉁불퉁하며 심지어 두어 곳은 제법 가파른 경사로이기까지 하니 포장도로만 달려본 사람들에게 그 길은 불편하고 심지어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이 여우숲에 처음 백오산방을 짓기 위해 서울에서 이곳을 오갈 때, 나 역시 몇 차례 웅덩이에 차를 빠트려 보험 견인 서비스에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장만한 농업용 덤프 트럭 세레스는 앞 뒤 대후와 그것을 연결하는 조인트 쇳덩이까지 모두 깨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여우숲으로 이르는 지금의 길이 내게는 고속도로 급으로 느껴지지만 비포장도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길은 험로인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험로인 그 길을 어떠한 차로도 큰 무리 없이 운전해서 올라올 수 있습니다. 물론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4륜구동 차가 아니면 올라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맑은 날의 경우 그 길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도로가 허락하고 있는 속도를 내가 아주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로는 시속 5km 이하로 올라올 때 가장 순탄합니다. 기어는 당연히 1, 오토매틱의 경우 ‘L’에 두어야 합니다. 이 상태가 바로 쓸데없는 구동력을 구사하지 않는 최적의 속도요 기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곳의 더 험한 길을 오르던 세레스를 세 번이나 망가뜨리면서 나는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길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오직 도로의 경사나 노면의 상태 등 자연이 요구하는 속도에 나를 순응해야 하는 때가 있구나. 아무리 급해도, 또 아무리 거센 비가 몰아쳐도 걸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구나. 주저 말고 차에서 내려 오직 그 비바람 속에 머리를 숙이고 헉헉 숨을 몰아쉬며 걷는 수밖에 없는 때가 있구나. 삶도 그런 것이겠구나.’

 

달리고 싶은 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공 속에 놓인 날, 그대 오직 허락된 속도를 따라 그 구간을 건너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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