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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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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 12시 25분 등록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세계가 존재합니다.

어른에서 아이로 바뀌는 마법의 문을 통과한 것일까요? 어린 시절 동화책 속의 그림처럼, 알록달록한 수채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입니다.

 

수목원 전경.jpg

 

월요일 아침 9시에 혼자 입장하는 관람객이 이상했던지, 안내서소에서 둘러 볼 곳을 일러 줍니다. 목련, 수선화, 동백나무, 삼지닥나무, 마취목, 영춘화가 핀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바람은 아직 차고 꽃들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봄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구역은 작고 아담했지만 절묘합니다. 꽃들을 보다가 지치면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 전망대에서 쉬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풍경3.jpg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문을 보면서 설립자가 궁금해졌습니다. 수목원내에 있는 기념관에서 기록과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푸른 눈의 미국인 故 민병갈 박사입니다.

 

그는 1945년 미군의 청년장교로 한국에 와서 한국의 산하와 풍속에 매료되어, 오로지 개인의 사재를 털어 수목원을 조성했습니다. 아무도 그의 기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민둥산, 30센티만 파도 염분 섞인 흙이 나오는 박토에서 그가 처음 나무를 심었을 때, 그의 나이 50세였습니다.

 

그는 나무를 존엄한 생명체로 보고, 인간이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닌, 나무를 위한 수목원을 가꾸는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식물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으나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나무들을 자식처럼 키웠습니다.

 

기념관에는 그가 하도 보아서 너덜너덜해진 ‘대한식물도감’과 ‘식물일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노랗게 바래진 8절지에 수목원 도면, 식물카드, 병상일지 등이 기록된 ‘식물일지’를 보면서, 꼼꼼함과 정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천리포수목원은 약 14,000 종류의 식물종을 보유하는 국내 최대 식물종 보유 수목원이 되었고,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목원 운영비 조달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습니다. 나이 80세가 넘어도 주중에는 서울에 올라와 증권회사 고문으로 일하며, 30년이 넘게 운영비를 조달했습니다. 나무와 꽃을 사랑하는 만큼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무거웠지만, 그는 삶의 무게를 즐겼습니다.

 

80이 넘어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도 천리포에 가고싶다는 말을 되풀이 하던 그는 고통스런 순간에도 나무들이 잘 자라기를 염원하다가 82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된장과 김치를 즐기고, 온돌에서 사는 것이 즐거웠던 그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며 한국인으로 귀화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았고 혈육을 남기지 않았으며, 한국에서 보낸 50년 생애를 수목원 조성을 위해 살았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현금마저도 수목원에 남겼습니다. 수목원은 그렇게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서거 1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서거 10주기(2012.4.8)에, 죽어서도 나무들의 거름이 되고자 했던 그의 뜻을 받들어, 생전에 유난히 사랑했던 목련나무 아래 그를 모셨습니다.

 

  그의목련.jpg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수목원의 방문객들이 늘어났습니다. 꽃길을 걷고, 해변을 바라보는 사람들,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와 연인들의 속삭임도 싱그럽습니다.

 

목련의 꽃말은 ‘숭고한 정신’입니다.  ‘처음부터 그냥 한국이 좋았다’ 고 말하는 그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나무와 숲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민병갈 박사의 나무’라고 안내문이 붙어있는 목련나무 앞에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자연을 향한 한 사람의 선한 신념과,

그 영향력이 갖는 아름다운 힘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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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12:39:09 *.97.72.143

나는 오늘 아침 '목련화'라는 노래가 문득 떠올랐답니다.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사랑을 지닌 진정한 가인 한 사람을 뜨겁게 느끼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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