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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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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1일 19시 39분 등록

 

 

딸 녀석과 단 둘이 만났습니다. 녀석의 감기몸살 때문에 이미 지나쳐버린 딸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는 아파서 외출할 수 없는 아내 사정으로 정말 모처럼 딸과 단 둘이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쇼핑을 했고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숲으로 떠나온 지 어느새 8년차, 함께 살지 않은 그 시간만큼 부녀지간에는 서로 모르는 시공이 있었습니다. 이따금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해후가 그러하듯 서로의 분리된 일상을 일부러라도 미주알고주알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녀 사이에는 그런 노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부재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만의 시간은 특별했습니다. 딸이 엄마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듯, 애비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쩍 커 있었습니다. 녀석은 애비와 단둘이 갖는 오랜 만의 시간을 기뻐했습니다. 학교와 일상, 친구들의 이야기를 재잘댄 끝에 자신이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털어놓았습니다.

 

녀석은 친구들과 제법 잘 어울려 지내고 있지만, 그 속에는 항상 외로움이 함께 뒤따른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관심을 갖는 연예인 이야기나 TV 프로그램 이야기, 선생님 흉보기 따위에 별무리 없이 호응을 하며 함께 놀지만, 정작 깊은 이야기를 나눌 대상을 찾을 수가 없어 외롭다고 했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세상은 왜 배우는 것과 달리 부조리가 많은지, 사람의 마음은 왜 저마다 다른 모양새이고 또 그것은 종종 비상식적으로 충돌하는지... 녀석이 품은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공유할 친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직 스마트폰을 데리고 노는 친구들의 관심과 대략 그것에 기반하여 쏟아내는 지극히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에 맞장구를 치는 것은 또래집단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녀석이 품은 또래집단 속에서의 외로움을 금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 역시 이미 그리고 지금도 종종 그런 외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으니까요. 도시에 살 때 빠르고 화려한 일상 속에서, 혹은 훈련된 지성과 교양을 나누며 관계하던 대중 속에서 나는 종종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깊은 교감은 없고 형식이 지배하는 관계, 정말로 따사로운 미소는 실종되고 훈련된 웃음 속에 감춰진 차가운 판단... 나 역시 그 사정들과 깊이 불화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피는 참 무섭습니다. 녀석이 얼굴만큼이나 심성도 애비를 닮았으니...

 

나는 딸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도 위로를 얻을 수 없을 때,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얻어왔던가? 나는 그 겉도는 일상의 허허로움을 걷어치우고 어떻게 충만한 하루하루를 만날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나의 대상은 크게 셋입니다. 가장 큰 존재는 숲과 자연, 다른 하나는 책,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누구에게도 위로를 얻을 수 없을 때 책을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고, 동류의식을 지닌 애비와 더 자주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딸은 흔쾌히 그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대 그렇게 외로운 날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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