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박미옥
  • 조회 수 2403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13년 11월 22일 07시 15분 등록

고전 리스트는 대체로 따라가되 편성은 독특한 것이 좋겠다.

- 방송 중 내가 한 말만 편집해 넣고

- 텍스트의 선택도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방송과 다른 것들도 절반 정도는 들어가면 좋겠다.

잘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 보아라.

 

잘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 보아라.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나 무거운 한 마디인 줄은. 연구원 3년차를 맞던 그 여름, 현역시절의 치열함으로 다시한번 고전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스승께 전하자 대뜸 말씀하셨다. 마침 고전읽기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방송을 따라가며 그 내용을 묶어내 보지 않겠냐고.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현역 연구원 시절에도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뵙지 못하던 스승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거다.

 

두 계절을 보내며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한 이런 저런 시도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스승이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에이, 그건 유고집이라 안 돼요.’하며 농담처럼 넘겼던 것이 이 기획에 대한 마지막 논의였다.

 

사부님, 약속드린 거 꼭 다 지킬께요.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께요.’ 왜 그랬을까? 황망히 가신 스승의 부음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목소리였다. 착각이었을까? 영정사진 속 스승의 흐뭇한 눈빛은 내 다짐에 대한 응답인 것만 같았다. ‘그래, 너를 믿는다. 너는 꼭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인 일인지 다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읽기 시작한 마음편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9년 넘게 매주 정성스레 띄우신 편지를 한통한통 읽고 정리하는 시간들은 더할 수 없는 위로였지만 마지막 편지를 읽을 즈음 나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성실히 실천했다고 자신하며 가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된다면 그건 분명 책임지셔야 해요라는 무언의 항의까지도 서슴치 않던 철없던 오만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던 거다. 사부님, 죄송해요. 잘 못했어요. 그런데 사부님, 제가 알던 당신이 아니시라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신가요?

 

미친 듯이 그의 흔적을 더듬었다. ‘사부님, 산다는 게 대체 뭔가요? 꼭 그리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건가요? 놀이와 일이 하나가 되는 게 정말로 좋기만 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을 수 없다면 어떤 각오와 준비가 필요할까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저도 그 시험들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을 치르고 우리가 만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승이 남긴 글을 찾아 읽으며 생전에 못 다한 질문들을 던지고 또 던졌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질문을 하느라 시간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더욱 필사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승의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시작된 구본형 다시 읽기가 A4 1,300페이지 분량에 육박하는 <구본형 칼럼>에서 막을 내릴 무렵 나는 겨우 알게 되었다. ‘잘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 보아라.’는 말씀의 숨은 의미를.

 

11월 말, 스승이 마지막으로 남긴 텍스트 <고전읽기>(가제) 출간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혹여나 스승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단순히 방송내용을 옮기는 선을 넘지 않기로 했던 작업은 어느새 행간에 숨은 뜻을 헤아려 다듬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부담이던 일이 충실하게 각자의 역할을 소화해준 동료들의 손길을 거치는 사이에 이쯤이면 한번 해 볼만 하겠는데하는 수준으로 말랑말랑하게 변신하는 기적도 체험했다. 서먹하기만 했던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고 상대의 존재에 감사하는 사이가 되어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스승이 내게 알려주고 싶은 삶이란 바로 이런 거였구나

 

내면의 가치를 잃었다고 느낀다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지표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황홀을 맛본지 오래 되었다면 내 영혼을 위해 바로 지금이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구본형 칼럼 <고전은 불완전한 우리를 찌르는 진실의 창> (2012.08.19.) 중에서

 

언젠가 한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햇빛 가득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아름다운 인생 하나를 건설해야 한다. 아름다운 그날 하루를 내 삶의 국경일로 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게 그 안내자의 소임을 맡기려 한다.

 

구본형 칼럼 <저 안내자가 멈출 때까지 계속 걸어갈 것이다>(2003.01.24.)중에서 발췌, 편집

 

 

<고전읽기>는 이미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시작한 것 같다. 부디 스승께 소개받은 이 친절한 안내자의 매력을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픈 엄마들의 마음공부방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http://cafe.naver.com/momtime)>

 

 

 

 

 

* 안내: 인문학아카데미 12월 강좌 , 글쓰기, 그리고 인생’ by 김학원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까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인문학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2월 강좌는 , 글쓰기, 그리고 인생을 주제로 휴머니스트출판사 대표 김학원 선생이 진행합니다. 커리큘럼과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 강좌 소개 : http://www.bhgoo.com/2011/582424

IP *.1.160.49

프로필 이미지
2013.11.23 05:41:58 *.160.136.112

아름다운 당신.

프로필 이미지
2013.11.24 09:57:52 *.1.160.49

^^*

프로필 이미지
2013.11.24 08:28:34 *.153.23.18

미옥님 글을 읽으면 구본형 칼럼1300페이지에 도전하고 싶어집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로 때우고 안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약속을 놓지 않고 완수해 가는 과정에서 답을 얻어가시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전 읽기 책이요^^ 

프로필 이미지
2013.11.24 10:01:35 *.1.160.49

재미있었어요.

'스승'으로만 만나던 그분을 '인간'으로 다시 만나는 느낌.

참 좋은 느낌이었답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3.11.24 09:15:25 *.38.189.36

'잘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 보아라.'

보통은 이 구절에 잘 꽂이지 않는데 그대는 스승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새로운 눈이 열린 듯하다.

고전책은 그대 덕분에 잘 나올 거 같다.

오늘 묙의 치아가 환하게 드러난 웃음이 떠오른다.

프로필 이미지
2013.11.24 10:12:27 *.1.160.49

'잘 생각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 보아라'

 

심장으로, 가슴으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라는 의미겠지요?

 

머리로만 생각했다면 결코 감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테니까요.

머리는 '좋은 방법'을 찾는데 잘 활용하면 될 때가 있다는 걸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책이 잘 나온다면 그건 아마 모두의 공일겁니다.

혼자였다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테니까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