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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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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3일 05시 32분 등록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 구본형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199

 

"밥맛이 없더라도 식사 열심히 챙겨 먹어라. 그래야 회복이 되니. 다음 주 다시 내려올 테니 그때 보자.“

“알았다.”

 

아팠다. 몸이. 거기다 그를 통해 처음으로 마음에도 병이 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아픔은 쌓이고 쌓인 생채기에 상처를 덧입혀 피고름을 만들게끔 하더니 결국 터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예약 일을 잡았다. 회색빛 하늘. 설마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그런데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고 다시 보겠다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예상치 않았던 입원. 병원에 가는 것을 반기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미루다 결국은 병을 키워 나도 환자복을 갈아입은 채 얼마 있으면 시작될 수술을 앞둔 상황이었다. 핸드폰이 울린다. 다급한 목소리.

“주치의인데요. 환자분이 오늘 고비가 될 것 같아 가족분이 계셔야 되겠습니다.”

뭐야, 이 말은. 멍했다. 머릿속이 하얀 백지처럼 아무 생각이 들질 않았다. 6개월 아니 적어도 3개월은 살수 있다고 하질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단다. 긴급 소생술로 인해 가느다란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별다른 조짐이 없었는데.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공간의 깊이는 끝 모를 늪처럼 가라앉는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 링거 수액이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에게 말을 건넸다.

“집안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런데 수술을 미룰 수 있나요.”

말이 없다. 이런 경우가 없었던 듯.

“의사 선생님에게 말씀 드려보겠지만 본인은 괜찮으시겠어요.”

나? 그렇다. 이어지는 고통. 큰 수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극심한 통증이 반복되자, 작은 주사바늘 하나도 겁을 내는 내가 오죽하면 수술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을까. 살아가는 매순간의 상황이 그렇듯 지금 양자중 하나를 택일 하여야 한다. 진통제를 맞고서라도 가야할 각오를 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다. 그의 하나뿐인 혈육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아. 미안하다. 네 옆에 내가 있어주어야 하지만 나도 몸이 이런 상황이라 도저히 안 되겠구나. 미안하다.”

결정을 내리고 수술실로 향할 즈음 다시금 걸려온 통화 저 너머의 목소리. 마눌 님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슨 내용인데?”

“수술 끝나고 나면 얘기해줄게.”

직감이 왔다. 눈물. 자제가 되질 않는다. 뭐야. 사람이 이렇게 빨리 떠날 수 있는 거야. 목숨 줄이 동아줄보다 질기다고 이야기 하질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한기가 몰려온다. 부들거리는 팔뚝에 부여된 링거를 벗어던지고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도 너무 아프다.

 

수술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개구리처럼 팽개쳐 벌겨 벗겨진 나의 나신을 둘러싼다. 마루타다. 아니 샘플용 모르모트인가. 하반신 마취로 이어지는 주사바늘이 나의 척추 깊숙이 살아있음의 전령을 안긴다.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최신곡 아니면 7080.”

이런 상황에 음악이라니.

“7080이요.”

현실세계의 문이 닫히고 커다란 헤드폰이 나의 귀에 씌어진다.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연가’. 취한다. 이 상황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다. 그랬다. <쇼생크 탈출> 영화에서의 ‘피가로의 결혼’ OST. 창살 가득 감옥에서 음악 한 자락 산들 바람에 실어 퍼질 때, 그들의 마음속 잠자고 있던 자유라는 단어의 불길이 솟아올랐었지.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수술 시작합니다.”

집도 의사의 레디고 신호에 맞춰 갖가지 여러 기기들과 소음이 쏟아진다. 그리고 마취상태임에도 나의 의식을 부여잡는 무엇과 뱃속 깊숙이 육중하게 밀어닥치는 묵직한 어느 하나. 이게 뭐지. 죽음의 전령인가 아니면 애써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인가. 잠시의 꿈결에서 떠나는 그를 만났다. 웃고 있다. 스틱스 강을 건너 무의식 저편의 기다리던 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걸까. 세상에 다른 미련은 없었니. 아니, 생의 인연을 놓지 못해 눈을 감지 못했다는데 왜 유언은 남기지 않은 건지. 수술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는 생과 사의 무게 추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죽음 이후의 시간은 편안함 일까. 안락함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무저갱(無底坑)의 바닥일까. 나도 당신의 뒤를 따라갈지. ‘이별 이야기’의 가사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혼돈의 감정이 드는 거지. 애써 머리를 흔들어 깨우며 종내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넨다.

‘잘 가라.’

 

수술대 기기에서 울리는 기계음의 반응. 뭐지. 그의 응답인가. 음악이 멈춘 후 저 너머 세계로부터의 헤드폰을 벗긴 간호사의 한마디.

“수술 끝났습니다.”

그렇군. 아직은 나는 이곳에 있구나. 그는 그곳에 있고.

 

 

마루 (이재훈)

 

이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슬픔을 바닥에 깔고 앉을 수 있다

나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을 버텨왔다 그러나

멀리서 새벽 종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뜨개질을 하신다

엉덩이 밑에서 건져 올린 슬픔을

한 올 한 올 뜨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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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 08:29:12 *.153.23.18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선배도 쾌차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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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 09:09:21 *.38.189.36

전화했을 때 별 일 없다는 듯한 목소리여서 안심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구나.

마흔이 지나면서 상가집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는 걸 보면 영적이 나이는 분명한 거 같아.

몸 잘 추스리고 조만간에 얼굴 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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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 09:56:23 *.1.160.49

이궁...어째요.

부디 큰 일이 아니기를, 부디 얼른 회복하시길,

그리고 친구분 편하고 좋은 곳에 무사히 도착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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