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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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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6일 03시 05분 등록

한 사람의 서재는 그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오랫동안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긴 사람의 서재는 그 자신을 온전히 비춥니다. 그렇다면 도서관이 서재인 사람은 어떨까요?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중남미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현대 환상문학의 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입니다.

 

보르헤스는 책을 사랑했고, 독서광이었으며, 도서관을 낙원으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사람과 사물은 단어였고, 풍경과 사건은 문장이었으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항상 작가로서보다는 독자로서 더 우수했다”고, “내게 실제 일어난 일은 거의 없고, 나는 많은 일들을 읽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보르헤스의 아버지는 열렬한 독자이자 작가 지망생으로, 집에 책으로 가득 찬 개인 도서관을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것이 어린 보르헤스의 일상이었습니다. 보르헤스에게 도서관은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한 책의 서문에서 책의 세계와 실재 세상을 비교하면서 전자보다 후자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아버지의 도서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때때로 그 도서관에서 결코 밖으로 나간 적이 없지 않느냐고 자문할 정도다. 난 아직도 그 도서관을 자세히 묘사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청소년 때는 동네 도서관에서 놀았고, 30대 후반부터 9년간 미겔 까네 시립도서관사서로 일했으며, 50대 중반부터 18년 동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직을 역임했습니다. 누군가는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어 도서관에 묻혔다’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는데, 보르헤스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우주’. 이것을 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흔히 보르헤스를 ‘도서관의 작가’라고 부릅니다. 보르헤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벨의 도서관>은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이 단편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마도 편람 중의 편람일 책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제 내 눈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고, 나는 내가 태어난 육각형의 방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죽으면, 자비로운 사람들이 나를 난간 위로 던져 버릴 것이다. 내 무덤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이 될 것이고, 내 육체는 끝없이 떨어질 것이고, 썩을 것이며, 내가 아마도 무한하게 떨어지면서 만들어 낼 바람 속에 분해될 것이다. 나는 도서관이 끝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 소설에서 보르헤스는 ‘도서관’을 무한한 세계로 봅니다. “유일한 종족인 인류가 멸망 직전에 있다 해도 ‘도서관’은 불을 환히 밝히고 고독하게, 그리고 무한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소중하고 쓸모없으며 썩지 않고 비밀스러운 책들을 구비하고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무한한 도서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라는 말로 해결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일 어느 영원한 순례자가 어떤 방향으로건 도서관을 지나갔다면, 수 세기 후에 그는 동일한 책들이 동일한 무질서(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질서’가.)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나의 고독함은 그런 우아한 희망으로 기뻐한다.”

 

한 사람의 삶에 지옥과 연옥(煉獄)과 천국이 있다면 보르헤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은 보르헤스에게 지옥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었고, 도서관은 지옥을 연옥으로 바꿔주는 성소였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책은 <바벨의 도서관>이 보여주듯이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었고, 도서관은 보르헤스라는 존재와 그의 굴곡진 삶을 요약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책으로 가득한 ‘작은’ 나의 서재를 둘러봅니다.

나를 일깨워준 책들에게 감사합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을 보며 미소 짓습니다.

어느덧 내게도 서재는 치유와 창조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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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근 저, 보르헤스 문학 전기, 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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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2 : 조르바와 데미안의 북 토크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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