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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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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8일 08시 26분 등록

어제 여우숲에 때 이른 눈이 내려 쌓였습니다. 족히 반 자 정도 쌓였으니 11월 눈 치고는 폭설에 가깝습니다. 마침 한 기업의 힐링 캠프 마지막 차수 참가자들이 들어오는 날 그렇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먼 곳에 내려 눈을 맞으며 저 비포장 눈길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여우숲 운영진과 캠프 진행 스태프들이 길을 트느라 종일 눈과 씨름을 했습니다. 식당과 교실, 숙소를 오가는 길도 내야하고, 23일 동안 먹을 음식을 실어 날을 차도 올라와야 하니까요.

 

공교롭게도 이런 날 한 사보 제작팀이 나를 취재하러 나왔습니다. 미리 예정해 놓은 스케줄이었으니 서로 스케줄을 바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 역시 촬영 장비를 둘러메고 걸어서 올라왔습니다. 실내 인터뷰를 끝낸 뒤 잦아들지 않는 눈발 속에서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촬영을 담당한 사진가는 장비가 눈에 젖어 난감해 했고, 눈 내리는 숲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야 하는 나는 머리와 옷이 눈에 젖어 난감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눈이 쌓이면서 개인적으로도 난감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내일은 마산을 거쳐 경주에 있는 우리 변화경영연구소 영남권 독서모임에 가야 하는데, 오두막에 세워 둔 차를 끌고 내려가려면 오두막에서 아랫마을까지 내리막인 저 비포장 길 위의 가득한 눈을 치워야 합니다. 또 조금 장만해 둔 나무들을 지게로 옮기고 잘라 장작을 패두고 싶었는데 그 또한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캠프 참가자들의 야외 숲 강의도 실내강의로 대체해야 할 것입니다.

 

해마다 눈은 오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횟수와 양이 잦아지고 많아지는 편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제 겨울 초입부터 갇혀 살 각오를 다져야 할 듯합니다. 땔감이나 겨울 식량을 마련하고 눈을 치울 장비를 준비해두는 월동준비를 점점 서둘러야 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겨울이 참 좋습니다. 역동적으로 오가던 사람들도 줄고, 강의를 위해 출타해야 하는 시간도 대폭 줄고, 온전히 갇힐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는 눈 쌓이는 겨울이 참 좋습니다.

 

찾아온 취재 기자가 녹음기를 끄며 질문지 밖의 질문을 툭 던졌습니다. “숲에 사시는 게 진짜 좋으세요? 무엇이 그렇게 좋으세요?” 아침부터 오후까지 눈과 씨름하며 겪은 피로의 시간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궁금함이 살짝 묻어있는 뉘앙스였습니다. 즉답 대신 내내 장비를 들고 눈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생한 사진가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힘드셨죠? 무슨 오지 다큐를 촬영하는 것처럼 참 불편한 날이었죠?”

 

촬영 내내 나는 짬짬이 사진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가는 사진 전공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울산에 있는 한 대기업 화학 회사를 다니다가 확 때려 치고 서른 살부터 카메라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안온함을 버리고 눈보라치는 거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나의 산방으로 올라오기 위해 아랫마을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그는 소리쳤습니다. “-! 정말 멋져요-!! 이거면 충분해요.” 그는 감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촬영 내내 젖어드는 장비를 다루느라 애를 쓰면서도 그는 정말 자주 감탄했습니다. 나를 촬영하는 것과 무관하게 틈틈이 찍은 여우숲의 설경을 보여주며 그는 또 스스로 감탄하곤 했습니다. 말 그대로 소위 자뻑의 즐거움을 아는 사진가였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는 그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그 감탄할 줄 아는 사진가의 모습이면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족을 달아 답해주었습니다. “100km/h로 달리면 빨라서 좋아요.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고 싶다면 속도를 높이면 되죠. 그런데 한 시간에 기껏 4km 밖에 가지 못하는 걸음으로 걸으면 빨리 달리느라 만나지 못하는 장면과 순간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요. 오늘 눈 덮인 숲을 수천마리의 떼로 무리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을 보았죠? 그 소리도 듣고?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었고? 나뭇가지들이 붙잡아두는 눈이 꽃처럼 핀 장면은요? 바람은? 맨 얼굴에 닿는 차가운 눈은? 시려오는 발은? 그게 삶이잖아요. 빨리 달려야 할 때 빨리 달릴 수밖에 없지만, 그러느라 유보해 두는 것들은 언제 누릴 수 있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먼 곳을 향해 또 속도를 높여야 하는 게 우리 현재 모습 아닌가요? 삶은 순간순간을 마주하는 건데... 그건 정말 언제 마주하려고요? 오늘처럼 온전히 지금을 느끼는 것, 그게 삶이잖아요. 살아 있는... 숲에 살면 그런 삶을 살기에 훨씬 유리해요.”

 

그나저나 길을 터야 영남 땅으로 갈 텐데.... 그리운 얼굴들 마주하려면 저 눈과 종일 다투겠군요. 오늘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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