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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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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9일 12시 04분 등록

 

, 많이 힘들었다. 하던 일에 익숙해져 무언가 새로운 기운이 필요했고, 슬럼프가 자주 찾아왔으며, 무엇보다 글을 수가 없었다. 시장통을 걸으며 반찬거리를 궁리하든, 대단한 가을하늘을 바라보든 허깨비가 움직이는 같았다. 눈과 마음에 아무 것도 담지 못해 어찌나 허허로운지  마치 내가  벽을  통과하는 홀로그램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심해지면 글은 둘째치고 지상에서 버릴 같은 위기감이 닥쳐왔다. 도대체 사는 재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하고 너무 뻔했다. 최소한의 일만을 감내하며 몸무게만 차곡차곡 쌓아가던 어느날 드디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이상은 이렇게 살겠어!

 

무언가 새롭게 가슴을 뛰게 일이 필요했다. 굳이 일어나야 이유가 없어 땅속으로 꺼져드는 듯한 기분 말고, 일이 하고 싶어 벌떡 일어 나지는 그런 아침을 맞고 싶었다. 단연코 그것은 여행이었다. 나의 끈질긴 슬럼프가 너무도 익숙한 것들에 대한 권태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낯설다는 것은 자체로 축복이었다. 번도 적이 없는 곳에 가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감정에 빠져 봐야 지독한 나태에서 벗어날 있을 같았다. 그래! 가자!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아는 나이,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실제로 내게 남은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다수가 안전한 평균치 삶을 고수할 떠날 있다는 것은 나의 강점이기도 했다. 이토록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결심하고 나니 숨이 쉬어졌다. 마침 딸도 외국에서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환상의 커플이 되어 세계를 돌아 다녔다. 딸의 관심사인 레저스포츠의 현장을 찾아, 베트남의 무이네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 갔고, 태국의 짐톰슨이나 미국 산타페의 조지아오키프 처럼 나의 관심사인 단독자들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우리 둘의 공통관심사인 친환경이나 미니멀리즘 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했다. 1인가구가 47% 달한다는 스웨덴에도 갔다. 수명연장사회의 대안이 곳에 있을 같았다. 위에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자유로워져 우리는 어떤 환경,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있게 되었다. 오늘의 장면 속에 다시 서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삶의 압축판이었다. 나는 여행을 통해 비로소 현재를 살아내는 방법을 배웠다.

 

여행에서 돌아 마을 만들기 돌입했다. 나는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고미숙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천지의 기운이 바코드처럼 찍힌다는 인상적인 표현을 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인지하는 나의 바코드 마을 연관된 것이었다. 다만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했기에 여행이라는 우회가 필요했던 것인데 이제 나는 여한없이 작업에 헌신할 있었다.  마을은 일단 안전하다. 편안하다. 개인의 영역과 공통의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지역에 상관없이 마을이라고 부를 있다.

 

예를 들자면 집집마다 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가구 정도 모여 조리사를 채용하면 어떨까? 엄청나게 노후가 길어지고 1인가구도 늘어날 텐데 식사 하나만 해결해도 생활의 양태는 상상할 없을 만큼 다양해질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주거 관심같이, 고령사회의 뜨거운 감자들을 해결할 있다. 유명한 성미산마을을 비롯해서 곳곳에서, 독립적이지만 연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나도 오솔길 하나를 보탤 있었다. 여행하면서 보았던 다양한 시도들, 여행 후에 책들이 힘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일들을 하게 데는 대단한 이념이나 휴머니즘이 아니라, 오직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우선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안전과 무료함을 해결하고, 살아있는 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오직 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  나는 오래 전에 이런 자세를 구선생님에게서 배웠다.

 

꿈을 잃었다는 것은 자신을 다른 것으로 재창조해낼 주술의 힘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성공한 인물들은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그것을 위해 현실의 위협에 대항한다. 뻔한 인생을 거부할 권리, 과거의 나를 죽일 있는 용기, 새로운 곳으로 떠날 있는 무모함이야말로 꿈이 이루어질 있는 조건들인 것이다. --깊은 인생 220

 

내가 느끼는 선생님은 뼛속까지 개인주의자이다. 책을 때도 우선 구원하라고 강조하셨듯이,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출발점이었다. 나도 거기에 정확하게 부합하기에 그토록 선생님에게서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안의 욕구와 가능성을 직시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바를 향하기, 미래로 날아가서 오늘을 회고하기, 나는 선생님의 방법론을 모조리 차용했다. 그럼으로써 선생님이 남기신, 가장 부러운 경지에 도달할 있었다. 인생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인생의 결말,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 마흔 살에 다시 시작하다, 209

 

 

 

 

IP *.209.20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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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43:43 *.65.215.173

선배님으로부터 사부님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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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9:15:31 *.209.202.178

에궁~  글은 별 것이 아니고, 삶은 앞으로 하겠다는 것이라 부끄럽네요.

 

잘 지내지요?  홈피와 밴드에서 거의 자취를 찾아볼 길이 없는 철이  댓글을 달아주니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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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15:48:14 *.208.244.55

편지 이제 읽고 댓글 쓰러 왔습니다^^
이제 여행작가가 되시는 건가요?
저는 배멀미, 차멀미, 비행기멀미 등등 하여 여행은 꿈도 안 꾸고 사는데,
주변에 여행 떠나시는 분들이 자꾸 많아지시네요 ㅠㅠ
전 못 떠나도 탁월한 여행작가님들의 사진과 글로 세계를 느껴볼랍니다^^

 

그리고, 소장님... 미스토리
요즘 다시 읽고 있는데요... 개인주의자 소장님.. 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장님이 넘 좋습니다 ㅠㅠ

마을만들기 하시면 놀러 가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을은 안 만들라고요... 요즘 뼛속까지 외롭기는 한데,
같이 있어도 외롭기는 할 것 같고^^
더 나이들면 마을 공동식당 반찬만들기 노동 같은 건 해볼 뜻이 있긴 한데..^^

 

왜 이렇게 길게 댓글을 쓰죠;;;;
한선생님 편지 덕분에 오랜만에 연구소 홈페이지에 놀러왔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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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08:59:19 *.209.202.178

무얼 해도, 누구와 있어도 본질적인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해 버리면 훨씬 편해요.^^

나는 아예 기대가 없으니 외로움도 못 느끼는 유형이지만요.

전에는 내 성향에 "혼자 있을 수 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는데

요즘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싶어 아까울 때가 있네요. 

 

내가 꿈꾸는 것도 딱 공동식당 그 정도랍니다.

거기에 창작공간 대여...  가 더해지면 더 좋구요.

 

마을만들기, 나경씨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걸요.

전에 방과후 아이들에게 하는 것만 봐도 이미 마을이던걸요.

 

풍요로운 연말연시 보내기 바래요. 나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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