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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4일 21시 27분 등록

시 전문잡지들이 연이어 발행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십여 년 넘게 문단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잡지들이 휴간 아니면 폐간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현실의 장벽입니다. 그 장벽이란 쉽게 예상이 가능한 재정난이지요. 구독자가 자꾸 줄어들면서 재정난이라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는 겁니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 풍토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시 창작 강의에는 수강생들이 대거 몰리고 시를 쓰는 사람은 자꾸 늘어난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많으나 시를 읽는 사람이 없어서 시집과 시 잡지는 팔리지 않는다니 참 기이한 현상입니다. 

시는 어렵습니다. 읽기는 쉬우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는 언어를 조탁해서 만들어내는 높은 경지의 문학이지요. 그래서 시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조용히 시 한 줄을 읊다보면 폼도 나고 그럴 듯 합니다. 혹시 그런 이유로 시가 장식품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기우에 가까운 생각이 듭니다. ‘어린왕자’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시에서 중요한 건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시 자체입니다. 시를 읽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시를 받아들이는 가슴이라고 해야겠지요.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한지 꽤 되었습니다. 그런 바람을 타고 관련 강의도 부쩍 늘어났습니다. 인문학 단체는 물론이고 구청이나 도서관 등 어느 곳에서나 그리고 언제든지 강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삶을 제대로 보고 내 뜻대로 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말들 합니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한 학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 거지요. 시를 배우고, 글쓰기를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역사를 배웁니다. 삶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면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이루겠다고 합니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보겠다고 합니다. 

인문학을 배우려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그악스러워 집니다. 조금씩이라도 한 발씩이라도 삶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어야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인문학 강의를 듣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고운 시를 쓰겠다는 사람들은, 나를 치유하고 발전시키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더 넓은 마음을 가져보겠다는 사람들은, 삶의 길을 바꾸어 보겠다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더 나은 삶을 일구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 가슴들은 어디에 묻어버렸을까요. 

지금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면, 삶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면, 그건 진정한 것일까요. 진정 온몸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걸까요. 시인은 많은데 시는 없어지고, 인문학은 넘쳐나는데 진정한 삶은 허물어지는 기이한 시대입니다. 시를 읽지도 않으면서 시인이 되고 싶어 하고 있지는 않나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삶을 바꾸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 위안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런 위안 때문에 인문학을 또는 어떤 배움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요. 올 한 해도 껍데기만을 찾아다닌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요. 내 삶은 얼마나 변화했는지, 그것은 진정한 변화였는지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진정 더 나은 삶으로 변화했나요. 지난 일 년에 물어보세요. 

IP *.202.20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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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6 10:13:40 *.209.202.178

시인은 많은데 시는 없어지고, 인문학은 넘쳐나는데 진정한 삶은 허물어지는 기이한 시대!

 

인창씨의 준열한 물음이 마음을 파고 드는 것을 보니 또 한 해가 가고 있는 것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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