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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5일 00시 05분 등록

‘직장인들이 자신을 계발하는 가장 훌륭한 수련원은 바로 직장이라는 현장이다.’

- 구본형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p74

 

외근직 파트에서 근무하는 나. 내근 직으로 대표되는 관리부서외 외근 직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은, 비즈니스상 사람과의 만남에 일의 연속선상을 지닌다. 영업부 부서 발령을 받던 날. 여름 피서 철 흥에 겨움의 행선지가 아닌 무거운 발걸음으로 강원도를 향하였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대상은 동일한데도 휴식을 취하러 감이 아닌 업무상으로 방문한다는 것이. 별 헤는 밤에 일어나 다섯 시간여의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반겨 주는 이 없는 삼척이란 낯선 도시. 거래처 사장은 매출 이야기 하러오는 본사 직원은 넌더리가 난다며 매몰찬 말과 함께 문전박대다. 이 업이 만만한 게 아니구나 라는 본능적인 직감이 겨울 찬바람속 피부의 떨림으로 찾아옴에, 그로부터 시작된 역마살은 현재 교육 분야로의 업무로 이어진다.

일주일에 몇 번씩 서울역사의 출입은 - 덕분에 때때마다 옮겨 다니는 전셋집 이사도 이곳과 가까운 쪽을 우선으로 둔다 - 누구의 말대로 길에서 청춘을 다 보내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해가 바뀔수록 출장에 따른 육체적인 피로감은 잦아든다.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이고 부족한 잠을 청하다보면 목적지를 지나치기도 한다. 모텔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니던 시절에는 전국의 관련 계보도를 꿰뚫고 있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힘들다? 택시 기사가 되는 게 한때의 꿈이었던 어린 시절. 자유롭게 운전하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 그때에는 무척이나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그 시선은 겪어보지 않은 이의 사치였다. 얼마나 힘들면 중노동도 아닌 상노동으로 까지 표현을 할까. 자고로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움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현실의 프리즘이 펼쳐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내근 파트에 근무하는 이들이 부러울 적이 있다. 타지에서 숙박을 하고 늦은 밤까지 업무가 이어지는 해당 부서와는 달리, 그들은 정시 칼같이 퇴근한다. 불규칙한 일정 관계로 개인 약속을 잡기도 여의치 않다. 거기다 사무실 복귀 금요일 저녁시간은 얄궂게도 업무의 연장인 회식시간으로 이어진다. 집에서도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직에 대한 생각을 한 적도 빈번하였다. 어쩔까나. 주어진 현실은 팍팍하기에 상황에 대한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외근 직이란 특성을 십분 장점이란 케이스 쪽으로 살려보기로. 똑같이 처해진 환경의 프레임 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축제의 장이 될 수 있기에.

 

1. 여행자로써의 로망

<지구별 여행자>의 저자 류시화씨는 머리에 불이 나서 인도에 간다고 하였지만, 나는 업무로 인한 불로 오늘도 길을 나선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을 꿈꾸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한다. 여행이라는 익숙한 곳에서의 탈피를 통한 낯선 곳에서 여백의 충만함을 꿈꾸며. 배낭과 편한 복장이 아닌 정장에다 넥타이, 구두끈을 질끈 동여맨 도시 전사로써의 외양이지만 낯선 도시로의 여정은 잠들어있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택시와 기차, 낯선 처녀지에서 정해진 목적성의 거래처 파트너 외에 오늘은 어떤 대상의 풍경을 조우할 것인지. 직원들에게 이야기 한다. 어쩌면 우리 업은 외근직 이기에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주어진 업무 외에 그곳에서 풍광을 즐겨보자. 순천만 너른 갈대밭 고고한 자연의 역사와 전주 한옥마을에서의 고졸한 그 시절 정취는 넉넉함을 품게 한다, 부산 감천 문화마을 달동네 눈물겨운 우리네 인생살이와 광주 비엔날레 현대 미술 조류들은 부조화의 상생을 이루게 해주고. 배가 출출해지면 지역 특색의 먹을거리로 이동한다. 경상도 아지매의 순박함이 살아있는 대구 매운 찜갈비, 부산 남포동의 완당과 밀면, 적은 금액임에도 후덕한 인심을 자랑하는 광주의 자그마한 식당. 거기에 전주 삼천동 거나하게 차려진 산해진미의 안주와 함께하는 막걸리 한잔 걸치고 나면 호사가 그지없다.

 

2. 비즈니스적인 만남은 또 다른 연결성

업무라는 출발선에서 거래처장과 식사를 나누는 자리는 괜스레 편치 않다. 목적성이 있는 만남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매한가지. 당월 매출이라는 혹은 갑과 을의 이견사항을 논하는 자리에서라면, 마주하는 이나 건너편 자리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나 머릿속에는 각자의 계산기가 돌아간다. 그럼에도 사무실에서의 정해진 패턴에 따른 업무와 매일 보게 되는 그렇고 그런 똑같은 이들을 대하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환경의 다름이 있는 세월의 시간들을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이다. 안면을 자주하고 관계를 트다보면 뱃속 기름진 지방 살을 헤치고 감추고 싶은 달달한 세상살이를 서로가 내보인다. 사업 실패, 자금동원의 어려움, 시댁과의 갈등, 자녀 문제, 이혼과 재혼의 갈림길, 병마와의 싸움 등.

여느 삶이 그렇듯 고난의 어슴푸레함과 희망이라는 교차점을 대리로 공유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부쩍 굳은살이 박인 그네들을 닮아간다.

 

3. 팍팍한 현업에의 해우소

일이 풀리지 않거나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뒤로하고 짬짬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동료들. 니코틴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하얀 구름사탕을 내뿜으며 쌓인 응어리를 허공에 올리다 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들기도 하겠지. 반면 차 한 잔 들고 바깥 풍경의 상념에 잠시 젖어드는 나에겐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한가한가 보지.”

한가함? 웃긴다. 담배 한 모금 내뱉으러 밖으로 나가는 이에게 주어지는 자유 대비 그렇지 않고 멍하니 있는 여유의 한 호흡은 못 봐주겠다는 건지. 업무에 치이다보면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같은 맥락의 얽히고설킨 꿈을 꾼다. 실마리와 해법을 찾기 위해. 그럴 때 대중교통 노마드족의 탈것은 훌륭한 해우소의 수단이 된다. 외부로 펼쳐지는 새로운 상황과의 마주함. 그것은 잠시라도 탈출로의 배설구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점이 될 수 있다. 풀리지 않던 해결해야할 문제꺼리가 어느 순간 안개 걷힌 명료함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금전이란 명제에 묶여 오늘도 각자는 직장이라는 곳으로의 기상나팔을 불어제친다. 빽빽한 대나무 다발속 숨 가쁜 지하철 생존경쟁의 시발점을 체험하며, 밑바닥 박박 기는 재주밖에 없음에 한숨 쉴 즈음, 포장술 능한 동료는 진급의 엘리베이터를 잽싸게 올라탄다. 만년 00이란 용어에 가슴은 타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시울에, 뜨겁게 다시 새날로의 향함은 계속되지만 돌부리의 부침은 쉽지 않다. 언제 잘리게 될지, 어떤 비전이 있는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갈림길의 고민 속에서도 그 직장이라는 배는 다행히도 반복되는 출항의 닻을 잊지 않는다.

 

거룩한 성소(聖所)인 그곳에서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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