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창-
  • 조회 수 265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5월 3일 05시 13분 등록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하고 난 뒤 현장을 방문한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후진국에서나 라고 말한 건 우리나라가 후진국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착각입니다. 후진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후진국인 겁니다. 
자살률이 OECD 최고여도 GDP로 1인당 버는 돈이 얼마인가로 모든 걸 측정하는 나라. 노동자들이 쓰러져도 회사의 매출과 수익이 얼마나 많아졌는가로 경제의 기준을 삼는 나라. 사람이 사람대접을 못 받는 나라. 사람이 무시당하고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나라. 그 나라가 후진국입니다. 교역규모가 세계12위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그래서 돈만 많은 후진국입니다. 그런 후진국이니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배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선장이 최선을 다해 자기의 일을 했다면 이렇게 많은 목숨이 희생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고 목숨만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선장이었습니다. 
구조와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왕좌왕 갈팡질팡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닙니다. 승선자 숫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실종자와 구조자 숫자도 몇 번씩이나 정정을 하곤 했습니다. 구조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픔에 속을 태우고 답답함에 또 한번 속이 터졌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를 위한 정부의 모습만 보았을 뿐입니다. 
언론들은 제도권·인터넷 가리지 않고 속보 경쟁을 벌이느라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사고 첫 날, 대형오보를 내더니 그 뒤에는 희생자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미친 언론’ 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실종자 가족들은 취재진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생생하게 본 것은 삶의 바탕이 무너져 내린 우리 사회의 모습 이었습니다. 그건 그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노동단체가 쟁의를 벌일 때 가끔 준법투쟁이라는 걸 합니다. 말 그대로 법을 지키며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평상시에는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법을 지키는 게 투쟁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이 우리 사회입니다.
집을 나서면 조금 외진 4차선 도로의 교차로가 있습니다. 그 도로를 건널 때는 항상 조심을 합니다. 차량의 절반은 신호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어도 앞뒤로 차가 지나갑니다. 공공장소나 지하철에서는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오죽하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나올까요. 
예전에 어느 예능프로에서 외치던 농담 같은 말이 있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외칩니다. “나만 아니면 돼. 내 가족만 아니면 돼.” 불편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 생겼을 때 그 대상자가 나만 아니면 되는 겁니다. 나만 아니면 그걸로 끝입니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고,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내 손에 더 많이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 많은 것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의 인식들이, 그런 우리의 마음들이 이번의 비극을 만들어 낸 건 아닐 런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들을 욕할 수 있는 걸까요.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친 적이 얼마나 많을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건 또 얼마나 될까요. 조그만 이익을 얻으려고 남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게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요. 비극적인 이번 사건의 어느 한 지점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결국은 나도 숨어있는 공범이 아닐까 하는 죄스러움이 올라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즘입니다. 


IP *.202.172.21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16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4] 한 명석 2013.11.29 2635
2015 요란하게 중년을 건너는 법 한 명석 2014.10.15 2635
2014 직장이라는 수련원 書元 2014.02.15 2638
2013 소용없는 것의 소용에 대하여 [1] 김용규 2010.07.01 2645
2012 직면의 시간 김용규 2014.03.13 2645
2011 안이 아니라 밖을 보라 문요한 2014.04.16 2645
2010 유미주의자로 산다는 것 연지원 2015.03.23 2645
2009 삶은 대화를 통해 진화한다 문요한 2013.11.20 2647
2008 [변화경영연구소] [월요편지 38] 수능만점 서울대생, 내가 그들에게 배운 한가지 [1] 습관의 완성 2020.12.13 2649
2007 주말을 보내는 또 하나의 방법 [12] 신종윤 2009.09.14 2650
2006 발가락이 닮았다 書元 2014.12.13 2650
2005 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 file [2] 승완 2010.03.09 2651
2004 열정 노이로제 [1] 문요한 2014.06.18 2652
2003 구이지학에 머문 사람들에게 연지원 2014.08.18 2652
2002 그대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file [1] 승완 2013.12.24 2654
2001 잡다한 일상을 정리하라 [2] 신종윤 2010.03.29 2656
2000 몇십 년 만에 거리에서 반바지를 입다 file [2] 한 명석 2014.08.27 2657
1999 돈 말고 생명 [12] 김용규 2010.12.02 2658
1998 “그렇게 넓고 무서운 곳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박미옥 2014.08.01 2658
1997 그건 진정한 것일까요 [1] -창- 2013.12.14 2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