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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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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1일 09시 43분 등록

아주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 프랑스인은 자신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 아내의 이름은 묻지 않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레오라고 불렀습니다. 사자를 뜻하는 어원에 바탕을 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살 꼬마지만 언뜻 이름다운 사내다움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드립 커피를 마시며 나와 레오의 부모는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내가 요한에게 당신의 고향 프랑스에서는 몇 살부터 철학을 공부하는지 물었고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아갔습니다. 그 사이 레오는 바다가 낳은 새끼 강아지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놀았는데,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심심해했습니다. 엄마 곁으로 파고들어 우리의 이야기에 중간 중간 단속이 발생했습니다. 나는 레오의 무료함을 달래줄 겸, 또 평소 품고 있었던 자연교육에 대한 내 궁금증도 풀어볼 겸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를 하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레오는 반색했습니다. 나는 레오 손에 들려있는 돌맹이 세 개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른 자연물 몇 개를 주워오라고 했습니다. 나뭇가지도 좋고 나뭇잎이나 풀잎도 좋다고 했습니다. 나도 몇 개의 나뭇잎과 열매를 주워왔습니다. 서로 주워온 자연물을 테이블 위에 더하자 풍성해졌습니다. 놀이의 규칙을 설명했습니다. ‘모두가 눈을 가린 사이 내가 이 테이블 위에 있는 자연물 중에 하나를 감출 것이다. 무엇이 사라졌는지 맞히는 놀이다.’ 그들은 금방 규칙을 이해했습니다.

 

테이블 위를 자세히 살피게 한 뒤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레오가 실눈을 뜨고 염탐하려 해서 방지책을 두고 나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나무 조각을 숨겼습니다. 모두 눈을 뜨게 했습니다. 요한은 단박에, 아내는 잠시 뒤에 알아챈 눈치였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레오는 테이블을 살피기보다 내 손을 보고 있었습니다. 레오는 틀렸습니다.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테이블 위의 자연물 개수를 줄였습니다. 이번에도 레오는 테이블 위를 관찰하기보다 테이블 아래로 감춘 내 오른손으로 자꾸 눈길을 주었습니다. 아버지 요한이 팁을 주었습니다. “테이블 위의 장면을 눈 사진으로 찍어둬라. 레오!” 내가 테이블 위 자연물의 개수도 확 줄여주었습니다. 이후 레오는 집중력을 조금 더 높였습니다. 레오가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나와 요한은 레오를 격하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자연물 개수 하나를 늘리자 레오는 다시 당황했습니다.

 

나는 레오의 좌절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특별한 팁을 하나 주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돌맹이는 몇 개가 있지? 나뭇잎은 몇 장이지? 나뭇가지는 몇 개가 있니?” 레오는 숫자를 셀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정확히 종류별 개수를 말했습니다. 다시 놀이를 시작하자 이제 레오는 제법 잘 정답을 말했지만 이따금 엉뚱한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돌맹이나 나뭇가지의 크기를 구분할 수 있는 질문을 주었습니다. 녀석은 크다, 작다를 아는 아이였습니다. 레오는 돌과 나뭇가지를 감추면 척척 답을 말했습니다. 천재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것도 분류의 팁을 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내 기준이 오히려 녀석의 잠재력을 가로막을 수도 있으니까.

 

레오는 다시 강아지를 찾아 떠났고 그 부모와 나는 다시 교육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습니다. 오늘 레오와 함께 한 놀이에 대해 요한은 무척 의미 있는 공부라고 평했습니다. 이것을 발전시키면 생물학과 역사 공부에 까지 이를 수 있음을 단박에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지식 중심 교육이 갖는 한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현대사에서 공부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강력하게 알려낸 인물은 싸이나 김연아, 박지성처럼 소위 딴따라와 운동선수들이다. 그 원인을 나는 놀이가 부재한 교육,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과 철학을 배제한 교육 체계에서 찾고 있다.’ 요한도 자신이 열다섯 살 까지 프랑스의 자연 속에서 성장했고, 열다섯 살부터 정규과정 속에 철학 공부가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대학에 입학할 때 치른,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의 당시 시험문제가 시간이었다는 기억도 덧붙였습니다. 시간을 주제로 A4용지 6매를 써야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학창시절 끝없이 보기 안에서 답을 찾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다음 중무엇인가?’ 사지선다의 보기. 그리고 우리는 창의성을 잃었습니다. 스스로 사유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도록 끝없이 훈련받아왔지요. 거친 자연은 흥미로운 대상으로 가득합니다. 또한 위험도 함께 합니다. 다양한 빛깔과 소리와 향기가 넘쳐납니다. 우리의 시험문제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만 판단하게 하지만, 자연에서의 제대로 된 놀이와 경험은 스스로 느끼고 사유하고 판단하고 헤쳐 나가게 합니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 절로 자라납니다. 협동하며 위험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하고, 다른 생명을 경험하면서 나와 타자를 이해하는 폭을 넓게 합니다. 이 시대 청소년과 군인들에게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인성과 인내력, 배려심이 절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자연교육입니다.

 

우연히 여우숲을 방문했던 레오 가족은 이번 추석에 다시 이 숲으로 휴가를 오겠다며 떠났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로 내가 내려준 커피 값을 충분하게 대신하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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