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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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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7일 12시 18분 등록


삐삐.jpg


 

일찌감치 중2 50kg을 넘어선 체격답게 내 다리는 굵다. 그래도 젊어서는 치마도 잘 입고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바지만 입고 있다. 굳이 여성적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도 안 입으니 가끔은 치마를 입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부지런함이 없어서 주구장창 바지만 입고 있던 차에 여행을 갔겠다, 학문적으로 탐구를 해 본 것은 아니나 여행자의 직관적 관찰력으로 볼 때, 아무래도 유럽은 우리에 비해 외모에 대한 비중이 적어 보인다.

 

몸집이 크거나 나이가 많은 여자들도 날씬하고 젊은 여자 못지않게 예쁜 옷을 입었더라는 얘기다. 치마는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노출을 감행한 그들을 보며 나는 너무 빨리 점잖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구나 그들의 체구는 우리네와 비할 수 없이 큰지라 난생처음 스몰사이즈에서 옷을 고르는 진기한 체험을 하며, 헐렁한 윗도리에 무난한 바지만 입고 다니는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되었는데......

 

공기를 주입한 듯 출렁대는 몸을 가진 비만녀도 패션을 포기하지 않은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남자가 버젓이 치마를 차려입은 것도 보았다. 스콧틀랜드의 전통의상 같은 것 말고,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긴 치마였다. 그럴 수 있는 데는 남의 일에 흉보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꺼라는 생각도 뒤따라 왔다. 나는 조직생활을 안 하고 있고, 모임도 많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뒷담화가 횡행하는지를 알고 있다. 체면치레가 강하고, 역할에 의한 책임규정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은 이래야 하고, 엄마는 이래야 하고, 혼기가 찬 남녀는 이래야 한다는 규정이 너무 강해서 그 암묵적인 규정을 벗어나면 뒤에서 까느라고 정신이 없다. 작은 일 같아도 이런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는 창의성을 짓밟고, 그럼으로써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자유의 숨통을 죄는 것은 아닐지?

 

빈에서 본, 삐삐머리를 한 청년의 모습은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을 주었다. 아이 못지 않게 천진한 미소를 지닌 청년에게 너무 잘 어울리고, 천편일률적인 규정에 사로잡힌 우리의 허를 찌르는 것 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때, 내가 생각하는 규정에서 벗어나더라도 다른 사람의 흉을 보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한 번 그런 인식을 갖고 나니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더라는 것. 유행이 한참 지난 청바지를 입었네. 젊어 빠진 여자가 구닥다리 벽돌깨기 게임을 하네. 그게 재미있나?..... 심지어 지하철에서 나와 하등의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비판의 시선을 번득이며 흉을 보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자처하는 내게 그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요즘은 흉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깊이 느끼고, 스스로의 행태를 깨달을 때마다 가볍게 꾸짖고 벗어나려는 시각조정을 하고 있다.

 

어제는 반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무릎을 쑥 드러내는 복장은 거의 이십 여 년 만인 것 같다. 내가 흉을 보지 않겠다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남들도 흉을 보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아아! 얼마나 몸이 가볍고 시원하던지 무슨 큰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뭐 남자도 입는데, 다음에는 치마에 도전해야겠다. 헤어스타일이나 문신, 복장처럼 사소한 다양성이 큰 자유의 징표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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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1 11:40:09 *.148.96.27

다음에는 치마입은 모습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인증샷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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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1 16:53:02 *.254.19.183

하하!  멋이 문제지 언제고 입을 수는 있습니다용.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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