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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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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0일 06시 33분 등록

내 생애에 발가벗긴 나신으로 찍힌 모습들이 있다. 첫 번째는 돌 사진이다. 갓난아이는 현재 마른 몸매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인데 당시에 무얼 먹었기에 그렇게 우량아의 자태인걸까. 두 번째 사진은 포항 해수욕 기념이란 문구로 되어있다. 주연 배우들은 어머니, 형,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다. 아마도 남아있는 가족사진의 범주로서는 드물게 함께 포즈를 취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린 같이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태생적으로 모두 사진 찍기를 싫어해서인지 모일 시간이 없어서 이었는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화목했던 시절이 많지 않았던 탓일까. 덕분에 어머니 영정사진 제작시 어려움을 겪었다.

“누나. 엄마가 편찮으시지만 사진을 찍어둬야 되지 않을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래야겠지.”

입원을 해서 계실 당시였다. 그런데 그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요양병원으로 모신이후 마음 문을 완강히 닫아거신 상황에서, 사진 이야기를 꺼내면 혹시나 다른 오해를 살 수 있었기에. 종내 후회가 되는 상황이 발생 하였다. 장례식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사진으로 사용할 만한 게 없다. 어쩌나. 할 수 없이 병색이 완연한 가운데 스마트폰으로 찍은 한 장을 선정 하였다.

“어떡하죠. 이 사진 밖에는 없는데.”

“괜찮아요. 요새는 기술 발달이 되어서요.”

담당 직원은 얼굴에 포토샵 처리를 해댄다. 환자복은 멋진 한복 디자인으로 변신. 그 사진은 장례식 내내 조문객들을 반기었고 화장터까지 동행 하였다. 모든 것이 끝난 가운데 누나의 한마디.

“엄마 사진 네가 보관해야지.”

내가? 아들이 간직하는 게 당연한 논리이겠지만 어쩐지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변장을 했음에도 하얀 백발, 부리부리한 눈매가 매섭게 세상을 쏘아보고 있다. 힘겨웠던 세월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자식인 나조차 당신을 바라보기가 멋쩍은 입장. 거기에다 전체적 분위기조차 따뜻한 온기의 정보다는 차가운 기운이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처럼 삶 자체의 고된 날들이 담겨있는 모습. 엄마라지만 왠지 낯선 인물이 그곳에서 나를 쳐다본다. 왜 평상시 건강할 때 찍어두지 못했을까. 집으로 당신을 모시고온 첫날. 고민이다. 어디에 놓아두면 좋을까. 옛날 관습대로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 대통령의 표상처럼 떡하니 걸어두어야 하나. 나를 낳아준 분이지만 그러질 못하였다. 결국 그녀는 작은방으로 향한다.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형광등을 켤 때에도 눈을 피한다. 왜 우리 엄마는 저런 표정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쉽지 않은 현실이었더라도 온유함의 인상으로 화답할 수는 없었는지. 가만있어보자. 그녀의 예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장롱을 뒤져 사진첩을 오랜만에 들쳐본다. 웃는 모습이 많지 않구나. 그러다 작은 흑백사진 한 장이 가슴에 흘러내린다.

 

1972년 7월. 뜨거운 여름 한낮. 바다를 등진 채 카메라를 앞에 두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날씬한 형과 아직 수영복 볼륨이 몸에 맞지 않았던 누나의 모습. 이런 때가 있었구나. 밤톨머리에 남성 심벌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정면을 응시하는 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순진한 눈망울 속에 앞으로 펼쳐질 역사를 알았을지. 어머니는 눈을 감고 계시다. 세 아이는 저마다의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그녀만이 유일하게 세상을 보지 않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서일지. 아니면 ……. 당시를 유추해보면 아마도 그녀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과, 그에 따른 생계의 어려움을 극복치 못한 상황이었을 터. 그런 가운데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에 누구 네처럼 물놀이를 가자고 졸랐을 것이다. 여유가 없었지만 자식의 보챔에 그녀는 여행을 떠나야 했을 테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혼자서 삼남매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 그 다가올 시련들을 예상하고 질끈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지. 그래서인가. 그 이후 이 같은 가족사진은 보이질 않는다. 살기가 팍팍해서였겠지. 사진이란 녀석은 이처럼 많은 것들을 숨겨둔다. 여백의 속살로써. 등장인물 누군가가 그것을 퍼즐 맞추듯 다시금 이야기를 구성해주기를 바라며. 나름 행복했던 순간. 파도와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모래성을 쌓고 놀지 않았을는지. 이제는 그 잿빛 추억을 말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

 

아버지 사진틀을 꺼내어 뽀얀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그녀 옆자리 서로 마주보게끔 가지런히 위치 선정을 하였다. 명절과 기일 때에만 우리들 앞에 선을 보이셨던 분. 제를 올리고 나면 어머니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그에게 큰절을 올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전 지아비로써 살을 맞대고 살았던 장본인이기에 최대한 예를 갖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원망과 신세한탄. 북받친 설움이 나지막이 새어 나온다. 사진 속 그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건네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어떠한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 세살 무렵 그는 떠나갔기에. 어린 시절 나는 그에게서 원형의 한 부분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다. 무엇이 닮았을까. 그렇군. 짧은 머리와 짙은 눈썹. 성격? 그건 모르겠다. 까칠한 나의 기질은 누굴 닮은 걸까. 그의 생전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기위해 기원해 보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어무이, 좋으시죠. 이제서나마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만나겠네요. 그동안 쌓인 한과 회포 많이 나누세요.’

처음 맞선을 볼 때처럼 수줍게 그녀와 그는 눈을 마주친다. 그런데 헤어진 지 오래되셨기에 서로를 알아볼 수는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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