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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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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3일 00시 04분 등록

아버지는 위암 작은 아버지는 대장암. 그리고 형은 간암. 우리 집안 남자들의 가족력이다. 마늘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① (불쌍한 듯 혀를 끌끌 차며) 우리 남편 몸보신 위해서 고기라도 먹여야 되겠네.

② 어쩌다가 내가 고물에게 시집을 왔을까.

몇 번을 선택 하였을까.

 

닮는다는 것은 태어나면서 이어지는 유전적 지도 외에, 가족으로서 자의든 타의든 학습되는 경험의 산물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남남 이었던 남과 여도 부부로써의 연을 맺어 오래 살다보면 여러 형태로 서로 비슷해진다. 생김새, 걸음걸이, 말투, 식습관까지. 닮는다는 것. 이것은 좋은 일일까?

“어쩜 그렇게 어머님이랑 꼭 닮았어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녀가 쓰는 멘트이다.

“닮긴 어디가 닮았단 말이니?”

나는 이 말에 발끈한다. 정색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쌀쌀맞게 구는 태도나 굳은 인상, 오해를 살만한 말투, 관계의 문제성이 도출될 때 당신을 탓하곤 한다. 조직 생활에 적응치 못하는 것들조차. 이른 새벽. 지방 출장길을 재촉하던 차 배가 솔솔 아프다. 어제부터 시작된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약국에 가서 지사제까지 사먹었다. 당신도 항상 그러했다. 찬 것을 먹거나 이상한 음식들을 먹고 나면 반드시 장에 탈이 났다. 여차하면 뛰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니. 덕분에 그 인자는 고스란히 나에게로 이어진다. 해외에 나갈시 일순위로 확인사살을 하는 것은 당연히 화장실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화장실 인심이 야박한 유럽에서는 동전이 없어 낭패를 본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투덜거림의 목소리는 한층 커진다.

‘왜이리 안 좋은 것만 닮았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형은 그렇질 않았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무엇을 먹어도 괜찮고 잘 아프지도 않는다. 다시 이어지는 푸념.

‘좋은 것은 저쪽으로 다갔구먼.’

그랬다. 오롯이 열성 인자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나. 그렇기에 당신에게로 향하는 반응은 냉랭했었고, 닮았다는 멘트는 오히려 외면의 반응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솔직히 닮고 싶지 않았기에.

 

근간을 찾는다는 것은 원초적 본능일수 있지만, 그 용기와 작업은 의외의 작은 용기가 요구되곤 한다. 현재 나의 모든 행동과 실제 그리고 까닭 없는 감정 변화와 돌발행동. 그 밑바닥에는 이 뿌리로부터 파생된 영향이 적잖게 미치고 있고, 이는 부닥쳐야 알 수 있는 법이기에. 이 말은 본인이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까지 눈으로 확인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우린 가끔 갖가지 사유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선조들의 말대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증명된 이치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 역은 생각할 수 없다.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모습은 그 요인에서 기인하기에.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 이 단편소설 제목을 굳이 언급치 않더라도 발가락, 자는 모습까지 자식들은 부모님을 닮는다. 생각과 행위는 물론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싫었다. 어머니 외에 내 앞에 존재했었던 또 한사람. 형이란 등장인물의 형태도 떠올려야 했었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설 수 없었던 사람. 무기력, 무감각. 하루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자신의 아이는 어떻게 밥을 먹일 건지. 노후는 어떡할 건지. 꿈은 갖고 있는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전혀 없었던 그. 그의 백그라운드에는 어머니란 절대적 버팀목이 있어, 자식에 대한 모성의 맹목적 본능으로 길들이고 밥 먹이고 양육시켰다. 거기에 그는 순응한 반면 나는 철저히 반항 하였다. 발가락은 닮았지만 그를 닮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안간힘으로. 아니 바탕은 바뀌지 않더라도 외부의 채색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는 나름의 생존 본능에서.

 

의문 하나가 생겼다. 토양이 그렇다면 그 근본을 바꿀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마가스님이란 분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오늘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들은 내가 뿌린 씨앗.

오늘 내가 행하는 것은 미래의 씨앗이 된다.‘

 

미래를 바꾸기 위한 행보의 중심은 내가 현재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음을 말하는 것이렷다. 또한 현재 행함의 일차적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명제를 강조하는 것일 테고.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들을 그 원판불변의 법칙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일까.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왔어요.”

며칠 전부터 한쪽귀가 먹먹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라고 했음에도 그녀의 성화에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다.

“귀저로 인해 막혔네요. 치료를 해야겠습니다.”

치료? 나는 그것을 파내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몰랐다. 눈물이 질끈. 참아보려 하지만 외부로 비저 나오는 외마디 비명소리.

“귀찮더라도 한 달에 한번정도는 병원에 들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금번처럼 힘들게 빼내야 합니다.”

나 참. 별것도 아닌 걸로 인해 병원을 그것도 정기적 방문해야 하다니. 사유를 물었다.

“남들보다 귓구멍 구조가 좁아서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는 의사의 퉁명한 멘트. 귀 구조가 어떻다고.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니 그가 한마디를 더 거든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좋은 점도 있으니까요. 벌레가 귀로 들어가는 일은 흔치않을 겁니다.”

그걸 위로라고 하다니. 가만있어보자. 당신도 말년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생하였었는데. 혹시 나처럼 귀 구조가 그래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참 많이도 판박이구나.

 

마음과는 달리 몸뚱이만 커진 어른이 되었고, 영원히 함께할 것 같던 당신은 이제 내 곁에 없다. 그러기에 이제는 무엇이 닮았는지 확인할 길은 더더군다나 없어졌다. 심리학에서는 친한 연인일수록 모방의 행위가 강하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고 한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파는 것이 인간이다> 저서를 통해, 전략적으로 흉내 냄이 세일즈의 중요한 요소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갈린스키와 마둑스는 스텐포드 대학교의 엘리자베스 멀렌 교수와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모방 행동이 동조를 심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을 향상시키는지 여부를 실험하고 증명해 내었다. 닮는다는 것과 모방이란 것이 함께 라는 공동체의식을 넘어, 이래저래 비즈니스 영역으로까지 활용되는 시대인 작금. 언제쯤일까. 이 같은 거창한 이론은 제쳐두고라도 당신에 대한 푸념을 멈추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것이 전략적 활용은커녕 소갈머리가 제대로 박힌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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