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141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11월 11일 13시 48분 등록

    

신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는 존재라면 농부는 신의 손이다

- 마하트마 간디

 

 

김계수가 지은 <나는 달걀배달하는 농부>를 읽었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3년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1년 고향인 순천으로 귀농했다. 1961년생이니 올해 55세이고 귀농한 지는 15년이 넘어 책 속에 보이는 모습은 여느 농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아직도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학벌부터 거론하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잠시 망설이다 그대로 서두를 잡는다. 학벌지상주의를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갖는 희소성, 상징성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서다. 나도 어깨 너머로나마 농사를 겪어보았기에 그 힘든 일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이 누구보다 더 잘 해 내는 것이 감격스러운 것이다.


 

전교조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퇴직에는 좀 더 본질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책 속에 드러난 사고가 어찌나 깊고 단단한지 가히 철학자의 눈매와 사색을 방불케하기 때문이다. 우선 농사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들어보자.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특히 농사일은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피지 않으면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농부는 작물을 보살핌으로써 그 결과물로 다시 가족과 이웃을 보살피는 이중의 의미를 안고 사는지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북돋는 존재가 된다. 그럼으로써 지상에서 신의 일을 대행한다.” 그러면서 서두의 저 구절을 딱 인용해 놓았는데 이 사람 진짜구나 싶다.

 

 

농부다운 농부, 진정한 직업인을 보는 마음이 고마울 정도이다. 이런 진짜 직업인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절인가그가 떠나 온 교단만 해도, 교사이고자 할수록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지정치판은 쳐다보기도 싫어 투표를 안 한 지 오래지만 정치가 우리네 삶에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알기에 생각하면 가슴만 갑갑하다. 이런 세태에서 근본 중의 근본인 농사의 의미를 알려주는 농부가 마냥 고맙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유기농 기준을 얻기 위해 자신의 농사를 짜맞추고 싶지 않다고 한다. 보통은 인터넷 직거래를 선호하기가 쉬운데 그는 그것이  효율만 추구한다며 서로가 잘 아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여 서로 살리는 소규모 공동체를 지향한다. )


그는 양계를 하여 일주일에 두 번씩 순천과 벌교의 300세대에 달걀을 배달하고, 2천 평의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생동감에 대해 써 놓은 부분을 보면 그가 천생 농사꾼인 것을, 뇌가 아니라 뼈로 농사를 인식한 듯 하다는 아버지 세대의 농사꾼에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온 뒤 굳어 버린 땅을 뚫고 올라오는 무순의 놀라운 힘, 풋고추 중에서 처음으로 갈색을 띠며 익기 시작하는 첫 번째 고추의 변색과 잘 익은 고추들의 선홍색 광채, 물에 후줄근하게 젖은 몸으로도 기어코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투명한 살색 부리와 발가락, 태어난 지 두세 시간 된 송아지가 일어서 보려고 몸부림칠 때 흔들거리는 네 다리와 하얀 앞니 두 개, 암탉이 알을 낳으면서 전신의 힘을 쏟느라 내는 신음 소리, 때 이른 서리를 맞고 뜨거운 물 뒤집어 쓴 모습을 하고 있다가 햇빛을 받아 다시 파랗게 본색을 되찾고 마는 김장 배추와 무, 폭우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 준 논두렁 등등. 날마다 계절마다 메뉴를 바꿔 가며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에서 나는 힘들 때는 많지만 권태를 느낄 틈은 없다.”

 

이 많은 일을 하며 글은 또 언제 쓰는지, ‘참새처럼 너무도 사소한 글감을 가지고 펼쳐놓는 사유의 깊이가 감탄스럽다. 그 중 백미는 김계수유기농달나무농장의 거리.


 

그가 자신의 농장을 달나무농장이라고 이름지어 홍보 전단에도 넣고 그랬는데, 한 친구가 김계수유기농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실명을 넣으라고 강하게 권유했다.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되고,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논지인데, 그는 자신의 일처럼 배려해주는 친구가 고맙지만 끝내 달나무농장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그 변이 어찌나 사려깊고 문학적인지 한 번 들어보시라.

 

그 첫째 이유는

어떤 일이 자신과 사회에 아무리 큰 의미를 갖는다 해도 그 일을 하는 본인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다른 어떤 사람도 즐겁게 만들 수 없을 것인데.... 나는 이름이라는 재갈을 입에 물고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 둘째 이유는

들일을 하다 보면 온종일 햇볕이 드는 곳보다 은근히 그늘이 드는 곳의 흙이 부드럽고 촉촉해서 생명이 나고 자라기에 참 좋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햇볕에 너무 많이 오래 드러나 있으면 색이 바래거나 쉽게 시들고 바스러져 본래의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한다. 사람의 이름도 수많은 이들의 따가운 시선에 계속 드러나 있을 때 그 본성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달나무농장이라는 나뭇잎 뒤에 살짝 숨어 그것이 바람결에 팔랑거릴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햇볕을 받으면서 일하고 싶다.

 

저자가 밝힌 이유 말고도, ‘김계수유기농보다는 달나무농장이 훨씬 아름다운 표현이라는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저자의 문학적 감각이 뛰어나다. 이만한 토대 위에 사회적 신념 또한 강력하니, 그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순천광장신문>을 격주로 발행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리라. 그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이 책이 나온 거고.

 

단지 일신이 편하고, 사회적 입지가 무난하다는 이유로 교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만한 자긍심과 평화와 생산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있을 자리를 소신껏 결정하여, 있는 힘을 다 해 뿌리를 내렸으며, 이제 그 뿌리에서 새 잎이 돋고 나무로 커 나가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그의 이름도 예사롭지가 않다. 달 속의 계수나무처럼,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위로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준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립인간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IP *.230.103.18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신의 손 한 명석 2015.11.11 1415
2014 감응, 마음은 어지럽고 잠은 오지 않는 밤 김용규 2015.11.13 1430
2013 스물아홉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대기만성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13 1463
2012 먹고 살려면 書元 2015.11.14 1315
2011 또 하나의 빈곤 연지원 2015.11.16 1506
2010 1등보다 3등이 더 행복한 이유 차칸양(양재우) 2015.11.17 1436
2009 우리 모두 <양화대교> file 한 명석 2015.11.18 1433
2008 관광객 말고 여행자로 살기 김용규 2015.11.19 1339
2007 서른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돈과 행복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20 1571
2006 두 나그네를 그리며 연지원 2015.11.23 1199
2005 은행나무가 춤을 춘다 연지원 2015.11.23 1428
2004 분노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 차칸양(양재우) 2015.11.24 1435
2003 그런 날이 오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 김용규 2015.11.26 1316
2002 서른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SNS 활동 재키제동 2015.11.27 1531
2001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書元 2015.11.28 1289
2000 정말로 거저먹기의 글쓰기 연지원 2015.11.30 1431
1999 항상 제자리만 맴도는 당신에게 차칸양(양재우) 2015.12.01 1586
1998 이 삭막함을 어찌 할까요? 한 명석 2015.12.02 1441
1997 당연함을 비틀어보는 질문 김용규 2015.12.03 1356
1996 서른두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꿈 재키제동 2015.12.04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