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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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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6일 09시 36분 등록

경험은 놀랍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경험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관용을 품게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역도 실제로 경험하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경험은 관점을 변화시킨다. 또한 경험은 앎을 이해로 바꾼다. 체험이 못하는 일도 척척 해낸다.

 

우리 사회는 체험과 경험을 어느 정도 구분하여 사용한다. 체험(體驗)은 몸 ‘체’자를 쓰는 한자어다. 몸으로 잠깐 겪어보는 일이 체험이다. 체험은 일시적이고 가상적이다. 예전 TV 프로그램 중 방송인들이 노동 현장에 가서 일일 근무를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를 두고 ‘경험’이 아닌 <체험! 삶의 현장>이라 부른 것은 정확한 용법이다. ‘가상현실 체험’이지 ‘가상현실 경험’이라 부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사람들 위에 전혀 새로운 빈곤이 덮쳤다.” 발터 벤야민이 1933년에 쓴 에세이 <경험과 빈곤>에서 한 말이다.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 경험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예전의 “사람들은 경험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언제나 어른들은 그 경험을 젊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벤야민은 도전적으로 묻는다. “이 모든 것은 어디로 갔는가?”

 

경험을 찾으려면 경험의 정체부터 알아야 한다. 국어사전은 경험(經驗)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경험이 ‘지식’과 ‘기능’을 창조한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반면, 체험은 “경험과는 달리 지성ㆍ언어ㆍ습관에 의한 구성이 섞이지 않은 근원적인 것”(국어사전)을 말한다. 벤야민은 경험과 체험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사전적 정의를 통해 영혼, 의식, 지성의 동반 여부가 경험과 체험을 가르는 요소가 됨을 직감한다.

 

똑같은 사건에도 어떤 이는 체험하고, 어떤 이는 경험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면 그 만남은 체험인가 경험인가? 언제 어디서나 SNS에 접속한 채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일상의 경험 중 상당 부분을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내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책을 눈으로만 읽는 사람과 음미하고 실천하며 읽는 사람도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우리 시대에 경험의 빈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사람들 위에 전혀 새로운 빈곤이 덮쳤다”는 벤야민의 지적이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상황은 더 심각해졌는지도 모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대다수가 이중의 빈곤을 겪을 테니까. 신자유주의가 식자 독식 사회를 만들어버림으로 경제적 빈곤을 겪고, 고도화된 기술에 현혹되어 모든 것을 체험만 하며 살면서 경험의 빈곤에 허덕인다. 이 두 가지 빈곤은 얼마간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느 IT 기업의 CEO가 자녀들에게 SNS를 금지했다는 기사를 예사롭게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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