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132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11월 26일 10시 30분 등록

 

한 날 나보다 많이 젊은 청춘이 내게 물어왔습니다. 대략 이랬습니다.

아직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으세요? 보세요. 역사가 거꾸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장면들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어요. 유럽과 중동에서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연일 테러와 포격으로 몇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보며 밥을 먹잖아요. 이웃나라의 지도자는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옛날 제 나라가 일으킨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심지어 그 시대를 그리워하며 그 시대를 다시 불러오려 해요. 인간사는 과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우리 현실은 또 어떤가요? 가계와 나라에는 날마다 빚이 늘고 있어요. 사상 최대라는 표현을 더는 두렵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청년들은 어떤가요? 꿈은 고사하고 제 몸 건사할 숟가락 하나를 만들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기업은 사상 최대의 유보금을 쌓아 놓았다죠? 재벌 중심의 구조로 1세대와 2세대 재벌 기업가들이 성장을 주도해 온 나라에서 금수저를 물려받아 기업가가 된 사람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지도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어요. ‘창조를 강조하는 리더십은 또 얼마나 자기모순에 빠져 있나요? 역사를 단일한 시선으로 가르쳐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하죠. 보기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 창조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창조와 창의는 보기 밖에서 답을 찾을 때 시작되잖아요. 기업에는 비정규직이나 외주계약이 만연하고 있고 그것으로 삶은 너무도 불안정하고 버겁다는 아우성에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들리지 않아요. 그것이 가계와 기업과 국가에 정말 경쟁력 있는 대안인지를 큰 틀에서 다시 보려는 시선도 보이지 않아요.

 

한마디로 소통이 사라진 세상 같아요. 아우성에는 귀 닫고 차벽을 세우는 세상이에요. 그것에 분노하여 화를 참지 못하면 심지어는 세계적 테러집단에 비유되기도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럴수록 다른 쪽에서라도 사유가 더 유연해져야 할 텐데 갈수록 경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소통의 구호는 지나치게 선명한 분노로 차올라 있어요. 저쪽이 이쪽에 약을 올려 한 대 때려보라고, 그러기만 하면 이쪽의 명분을 덮고 폭행을 가한 가해자로 바꿔놓겠다는 의도가 분명한데도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마침내 거부 못할 장강으로 흘러가야하는 새로움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요. 집권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때요? 그들에게 정말 대의가 있다고 보세요? 민족과 국가의 머나먼 장래를 품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생각하세요? 오히려 사적 이익에 눈이 찔린 이들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언론은 또 어떤가요? 살아있나요? 통증 가득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세상이 썩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포기한 것 같지 않나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이런 장면을 매일 목도하시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가요?”

 

나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숲이 딱 그래요. 황무지에서 시작하지만 마침내 푸르고 깊고 다양한 빛깔과 향기와 노래 소리로 채워지는 숲으로 흘러가지요. 이따금 산불이나 산사태가 날 때도 있어요. 그때 숲은 흐름을 잃고 과거로 거슬러 가게 됩니다. 하지만 열망하는 생명들의 분투와 아우성과 소통을 통해 숲은 다시 깊고 푸르고 심지어 신령한 차원까지 나아가지요. 아주 긴긴 세월을 두고. 나는 그 모습이 우주의 섭리라고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그대가 지금 느끼는 절망은 아마 우리가 인간이라서 그럴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 전 과정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그 깊은 차원의 단계를 지금 다 보고 싶어 하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분노하고 외치는 것이고, 그러다 안 되면 체념하고 떠나가죠. 심지어는 산사태나 산불 편에 서서 숲의 흐름을 방해하는 자로 변절하기도 하죠. 하지만 숲의 그 긴 흐름과 아름다움은 체념하지 않는 생명들이 이룬 거예요. 그들은 자기 꽃으로 피려하고 자기 날개로 날아보려 하는 존재들이죠. 나요? 나는 체념하지 않아요. 원래 절망과 희망이 한 뿌리인 것을 아니까요.”




IP *.120.7.3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16 신의 손 한 명석 2015.11.11 1417
2015 감응, 마음은 어지럽고 잠은 오지 않는 밤 김용규 2015.11.13 1430
2014 스물아홉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대기만성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13 1465
2013 먹고 살려면 書元 2015.11.14 1315
2012 또 하나의 빈곤 연지원 2015.11.16 1508
2011 1등보다 3등이 더 행복한 이유 차칸양(양재우) 2015.11.17 1442
2010 우리 모두 <양화대교> file 한 명석 2015.11.18 1438
2009 관광객 말고 여행자로 살기 김용규 2015.11.19 1344
2008 서른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돈과 행복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1.20 1578
2007 두 나그네를 그리며 연지원 2015.11.23 1200
2006 은행나무가 춤을 춘다 연지원 2015.11.23 1453
2005 분노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 차칸양(양재우) 2015.11.24 1437
» 그런 날이 오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 김용규 2015.11.26 1321
2003 서른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SNS 활동 재키제동 2015.11.27 1539
2002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書元 2015.11.28 1294
2001 정말로 거저먹기의 글쓰기 연지원 2015.11.30 1438
2000 항상 제자리만 맴도는 당신에게 차칸양(양재우) 2015.12.01 1612
1999 이 삭막함을 어찌 할까요? 한 명석 2015.12.02 1451
1998 당연함을 비틀어보는 질문 김용규 2015.12.03 1363
1997 서른두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꿈 재키제동 2015.12.04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