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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8일 00시 52분 등록

모르는 번호.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낯선 이의 전화는 받기가 꺼려집니다.

“어디신가요?”

“이 팀장님. 000입니다.”

그는 직장 동료였습니다. 퇴사한지 오래 되었는데 웬일로 연락을 했을까요.

“찾아뵙고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업무 영역도 다르고 막역한 사이도 아니었건만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건지. 보험 등 권유하는이가 하도 많다보니 애써 변명꺼리를 찾습니다. 바빠서 안 된다고 할까요. 그래도 한솥밥을 먹던 사이인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약속을 정했습니다.


일상복 차림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내방한 그. 괜한 겁이 납니다. 무슨 부탁을 꺼낼 건지. 형편이 어려워졌나요. 서론이 깁니다. 근황을 묻자 자신을 화두로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현재 1인 형태 사업을 운영하며 주간 이틀 근무로 시간이 널찍하다는 그. 진지한 내용으로 접어듭니다.

“저는 회사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근은 말할 것도 없고 일이 있으면 주말에도 출근을 하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줄 알았었죠. 그날도 늦은 밤 퇴근길 이었습니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뭐야. 모두 자고 있는 건가. 괜한 소외된 감정이 쳐 오릅니다. 가장은 뼈 빠지게 밖에서 일하고 왔건만 도대체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안방 침대에는 아내가 누워 있습니다. 부아가 치밉니다. 이 여편네가.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역정을 내었습니다. 나 왔어. 시간이 몇 시인데.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돌아보는데 아내가 아닌 딸 아이 얼굴이었습니다. 겸연쩍기도 하였지만 순간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다큰 처녀로 훌쩍 자랐는지요. 엉덩이 크기가 벌써 성인인 내 딸. 그 순간 격한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뭐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거지.

사회생활 한다는 명분으로 정작 중요한 가족에 대한 역할,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없었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그길로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은 덜하지만 자유로운 현재의 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듣다보니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나도 똑같은 입장에 설수 있을 터. 그의 용기와 선택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제야 찾아온 본론을 꺼냅니다.

“그 후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던 중 다문화가정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탈북자들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전공 분야 외, 그들의 직장 직능교육 및 정착관련 부분들은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러다 팀장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만나자고 하였던 겁니다.”

머쓱해집니다. 무언가 다른 용건으로 찾아온 줄 알았더니만, 결론은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과 강의 재능기부 요청을 하러 왔다는 사실.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금방 답을 하지 못하며 얄궂은 생각이 겹쳐집니다. 팔자가 좋으시네. 시간이 남아도는지.

움찔. 그러다 과거 모습이 돌이켜집니다. 한때는 신부가 되기를 염원했었고 나환자촌, 버려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였던 나. 그랬던 내가 이런 이중적 감정이 드는 건 웬일일까요. 세상이 변하게 하여서인가요. 아님 원래 이런 이기적인 놈이었나요. 기름진 목마름에 물 한 잔을 들이킵니다.


업무 핑계를 대며 다시 보자며 돌려보냈지만 못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남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앞만 보며 잘살고 있다는 자족감으로 만족해야만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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