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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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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2일 10시 06분 등록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6년 가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서른여덟 살의 그는 3년 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꽤 긴 시간 동안의 여행 체험을 <먼 북소리>에 담았습니다.


나는 여행기를 읽을 때마다 가장 먼저 저자가 왜 여행을 떠났는지부터 알아봅니다. 떠난 이유를 보면 여행의 성격과 목적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기의 저자 대부분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하루키 역시 <먼 북소리>의 ‘머리말’에서 자신이 여행을 떠난 몇 가지 이유를 밝히면서 “그것은 예감과 같은 것이었다”고, “30대 중반을 지날 무렵부터 그 예감은 나의 몸속에서 조금씩 부풀어갔다”고 합니다.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여행이 주는 자유와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온갖 새로운 자극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행은 불확실한 영역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행은 낯선 공간과 사람들, 몸담고 있던 곳과 다른 문화와 사물들과의 만남이니까요. 우리는 여행을 하며 불확실성과 온갖 불편함을 견뎌야 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고, 반대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기도 합니다. 여행 기간이 길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3년간의 하루키의 여행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크고 작은 장애물에 직면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습니다. <먼 북소리>를 보면 좋은 일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그에 못지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 여행자는 무엇을 얻었는가?’, 여행기를 읽으며 내가 궁금해 하는 또 하나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관한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여행을 떠난 이유와 마찬가지로 여행이 준 보상에 대해서 여행기의 저자는 자문자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하루키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유럽에서 보낸 3년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저런 일을 겪은 후 결국 본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일 뿐 달라진 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말하자면 상실된 상황에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는 상실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력감은 무력감으로서, 피폐는 피폐로서 그대로 남아 있다. (...)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 한 번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훨씬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라고. 그렇다, 나는 낙관적인 인간인 것이다.”


공감할 수는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답입니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는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아서, 여행하지 않는 자는 오직 그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했는데, 하루키 또한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뭔가를 체득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생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하루키가 여행을 떠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흔 즈음에 필요한 ‘정신적인 탈바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정신적인 탈바꿈’에 성공한 듯합니다. 스스로를 여행자로 보는 관점과 일상을 여행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루키는 자기 안에 잠자고 있던 여행자를 깨우고, 일상을 여행할 수 있는 여행자의 마음을 살려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을 빨아들이던 상실감과 무기력, 그리고 피폐함은 여행 후에도 그대로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 늪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을 자기 안에서 찾아냈습니다. 그가 여행 중에 소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여행만이 정신적 탈바꿈을 위한 방법은 아닙니다. 거듭나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여행은 변환의 계기가 되곤 합니다. 여행은 변환의 가능성 혹은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이 점이 여행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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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저, 윤성원 역, 먼 북소리,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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