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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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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9일 12시 01분 등록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먼 북소리>는 그가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유럽을 돌아다닌 경험을 담은 에세이 형태의 여행기입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루키는 3년 동안 여행하며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썼는데 <먼 북소리>의 곳곳에 두 소설의 집필 과정을 밝혀두었습니다. 그는 <상실의 시대>를 쓰기 시작하던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학수고대하던 소설을 시작했다. 그때는 소설이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내 몸은 말을 찾아서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거기까지 내 몸을 ‘끌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편소설은 그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마라톤처럼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 막상 버텨야 할 때 숨이 차서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하루키는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장편소설을 시작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인가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소설을 꼭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야 시작할 수 있고,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야 소설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상실의 시대>를 시작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무력감과 피폐감에 빠져 지냈습니다. 미국의 도예가 스테판 디 스태블러(Stephen De Staebler)는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업에 임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는데, 하루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각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 한 권을 쓰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큰 맘 먹고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해서 고속도로 달리듯 책이 완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글은 앉아서 쓰지만 그 과정은 탐험입니다. 모든 탐험이 그렇듯이 발견과 위험을 동반합니다. 하루키는 “나는 장편소설을 쓸 때면 항상 머릿속 어디에선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내 경우 매우 특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의미에서도 그것을 일상적인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깊은 산림 속에 혼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수목은 벽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거대한 가지는 겹겹이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거기에 어떤 동물이 서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하루키는 “언제나 그렇다. 언제나 같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라고 계속 생각한다. 적어도 그 소설을 무사히 끝마칠 때까지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 이 소설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내 인생은 정확하게는 이미 내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이런 생각이 소설을 쓰면 쓸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키에게 <상실의 시대>를 쓰는 일은 필사적인 시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살아 있기 위해 글을 써야 했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 있으려고 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여행을 하면서 또 소설을 쓰면서도 방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조금씩 생의 깊숙한 곳을 향해 내려간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려간다.”


“나는 그런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고립된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의 근원을 캐내어 보고 싶었던(혹은 파고들 수 있는 데까지 나의 근원을 캐내어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분명 그런 갈망이 있었다.”


낯선 나를 만나는 과정에서 나온 글은 스스로에게도 낯설기 마련입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마음 상태가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는 나로서도 그때까지 써본 적이 없는 유형의 작품”이지만 “써야 했기 때문에 썼던 소설”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나는 책을 쓸 때가 왔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책으로 쓸 주제를 탐색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이 주제로 책을 쓰고 싶은가? 쓸 수 있는가? 써야만 하는가?’ 예전에는 쓰고 싶은지와 쓸 수 있는지에 집중했습니다. 앞으로는 세 번째 질문이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써야만 하는 글, 쓸 수밖에 없는 책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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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저, 윤성원 역, 먼 북소리, 문학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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