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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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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일 02시 02분 등록

고단함의 단내가 이어지는 늦은 밤. 세상모르는 아이는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쿵쿵쿵. 뭐지. 잠결에 일어나 하품하며 눈을 비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 이 늦은 시각에. 어머니는 잠옷 바람으로 밖에 나가 누구냐고 묻지만 응답이 없다. 빠끔히 내다본 문사이로 비치는 어수룩한 남자의 모습. 느낌이 좋질 않다.

“자고 있어라. 잠시 다녀올게.”

“어데?”

눈을 맞추지 않던 그녀는 낯선 이와 뜻 모를 동행을 한다. 날이 갠 다음날. 외삼촌이 찾아왔다.

“같이 가자. 엄마가 멀리 가셨으니 너희들은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야 된다.”

“왜요?”

상황판단이 되질 않는다. 왜 내말에 답을 주지 않는 걸까.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을 책가방에 밀어 넣고 옷가지 등의 짐을 챙겼다. 우리가 나온 후 커다란 널빤지로 방문 앞 엑스자의 대못을 그는 박는다. 망치로 못 치는 소리. 쾅쾅쾅. 커다란 소음은 의문부호인 내 가슴을 때린다. 무슨 일이람.

낯설다. 친척집이긴 하지만. 외숙모와 사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밥 한술 뜨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날들이 흩어져 갔다.

 

드디어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어데 갔다 왔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 밤 모습과는 달리 부쩍 쇠약해진 몸으로 한동안 천정만 바라보며 지낸다. 식은땀. 가위에 눌린 양 헛소리. 무슨 북받침이 있는지 눈물, 말라버린 쉰 목소리가 힘겨운 목숨 줄에 대롱대롱. 지켜봄에 그 울음은 나에게도 까닭 없는 세상의 험한 분노로 남게 한다. TV 9시 뉴스. 언제나 그러했듯 첫 기사는 머리가 훌렁 벗겨진 높으신 대통령의 차지. 특유의 근엄한 표정 및 억양으로 국민들에게 낭독 시작.

“꺼라.”

외마디의 소리.

“왜?”

“꺼라 안 카나.”

차갑다. 전원을 끄니 방안 무거움이 한가득. 뭐지. 뭘까. 바라던 대학교의 입문. 이런 신천지가 있다니. 획일화된 의식이 아닌 사람도 생각도 모두가 자유로운 공간. 해방구였다. 그 낭만의 시절들. 참 좋다. 그러다 그녀가 그날이후 겪은 행각을 늦게야 알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세간에 삼청 교육대라 불리던 곳. 그러했다. 깡패, 건달들과 같은 부류의 정신 개조 목적으로, 나라에서 강제로 잡아들여 몹쓸 짓을 시키던 그곳. 밑에서부터 무언가가 쳐 올라온다. 그런데 왜? 우리 엄마가 왜?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개인의 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승호.”

“예.”

“아버지 뭐하시노?”

“돌아가셨는데요.”

“그래. 그럼 엄마는 뭐하시노?”

생활기록부를 뒤져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왜 선생이란 작자들은 똑같은 질문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걸까. 어머니의 직업을 말하자 아이들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게 뭐야? 집으로 돌아와 누나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함구령이 떨어졌다.

“다음부터 엄마가 뭐하시냐고 물으면 시장에서 장사한다고 해라.”

왜? 눈치가 없는 나이지만 엄마가 하는 일은 내세울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랬다. 우리 엄마는 딸라 장사라는 것을 하셨다. 예전 신문 한 면을 장식했던 명동 암달러상 살인사건과 같은 그런 위험한 종류의 업을. 현금을 전대에 메고 외국돈을 환전하는 일이었기에, 강도들의 관심사를 넘어 파출소 리스트로 등록이 된다. 사단이 일어난 그날. 순화교육이라는 명분하 하루치 인원 할당 목표를 채우지 못했던 형사.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 밤 그렇게 우리들의 눈앞에서 끌고 갔다. 그랬다. 그녀는 그곳에서 새파랗게 젊은 딸년 같은 공수부대원들의 관리 체제하에 있었다. 정신개조 구호를 목 터져라 외치고 푸샵, 유격, 원산폭격, 행군 등 새사람이 되기 위한 군대 훈련을 받고 또 받았다. 새사람? 우리 엄마가 그렇게나 잘못한 삶을 살았던가. 애새끼들 굶기지 않고 여자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고 바동거렸거늘. 그 후에도 그녀의 생업은 이어졌다. 이젠 자식을 넘어 또 다른 무거움의 짐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날이 지나갔다. 아니, 나에게는 끝나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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