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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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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5일 13시 35분 등록

내 책상에는 읽고 있는 책이나 읽어야 할 책이 늘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책상 위 책이 아닌 어떤 책이 불현듯 마음속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런 책 대부분은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사둔 책들 가운데 한 권입니다. 그 ‘언젠가’가 ‘불현듯’인 셈인데, 딱히 그 책이 떠오를 이유가 없고 읽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점에서 신기한 일입니다. 어쨌든 나는 마음을 따라 그 책을 찾아 읽습니다. 어제 그렇게 손에 잡게 된 책이 이윤기 선생의 <무지개와 프리즘>입니다. 1998년 초판이 나오고 2007년에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온 책입니다.


<무지개와 프리즘>의 ‘여는 글’ 제목을 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나름의 독서 계획을 세우며 읽는 내게 <무지개와 프리즘>은 어찌 보면 ‘잘못 든’ 책입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그런 책에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건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문득 마음에 떠오른 책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무지개와 프리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는 글’에 이어 책의 1장 제목도 내 가슴을 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 언젠가 쓰고 싶은, 아마도 내가 쓸 수밖에 없을 책의 주제입니다. <무지개와 프리즘>을 읽으며 밑줄 친 구절 몇 개 옮겨봅니다.


“지금 삶에서 무엇을 취하고 있는가? 하고 있는 일은, 살고 있는 삶에는 지금 내 피가 통하고 있는가? 나는 하고 있는 일의 품삯이 아닌, 일 그 자체, 그 일의 골수와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가? 나는 삶에서 무엇을 취하는가, 가죽인가, 뼈인가, 문제는 골수이겠는데, 과연 골수인가?”


“(영웅신화에 등장하는) 이 괴물은 구경꾼으로 만족하는 사람 앞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괴물의 힘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의 정신의 용적에 비례한다. 괴물을 죽인다는 것, 곧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변용시킨다는 뜻이다.”


“책은 인생의 지도다.”


“책에 쓰여진 글이 지극한 진리가 아니듯이 프리즘이 만들어내는 무지개는 진짜 무지개가 아니다. 하지만 책은 작은 무지개를 지어내는 작은 프리즘이다. 나는 프리즘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 프리즘이 발병된 뒤로도 무지개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윤기 선생의 말처럼 ‘책이 인생의 지도’일까요? 내 경험을 돌아보면 분명 그런 책이 있습니다. 물론 지도가 영토는 아니기에 지도의 역할은 한정적입니다만, 좋은 책은 메두사와 대결하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헤르메스가 준 날개 달린 가죽신처럼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준비된 사람의 손에 쥐여진 좋은 책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기 위해 미궁에 들어가야 하는 테세우스의 손에 아리아드네가 쥐어준 실꾸리입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말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일리 있는 말입니다. “책은 인생의 지도”라는 말도 다시 살펴봅니다. 내게는 두 문장이 엉뚱하게 연결됩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들고, 잘못 든 책에서 지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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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저, 무지개와 프리즘, 미래인,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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