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연지원
  • 조회 수 25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8월 11일 10시 26분 등록


올해 안으로 독립하는 게 내 목표야. 그녀가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무언가를 실행한 눈치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부모님 댁에서 분가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부모님 댁과의 거리나 얼마나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지, 살려는 동네의 매물은 잘 나오는지, 요즘 시세는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 궁금했다. 나는 느긋하게 하나씩 물었다. 생각은 속사포 같더라도, 대화는 테니스 랠리를 펼치듯 질문과 답변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내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음을 안다. 요즘 월세는 얼마나 해? 대답하기 힘든 물음이었다. 그거야 동네마다 다르지. 어디에 살고 싶은데? 친구는 내 답변 속에서 자신의 물음이 엉성하다는 것을 눈치 채 바로 말을 받았다. 아직 그걸 결정 못했어. 얼마큼 떨어져 살고 싶은 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네. 아예 가깝든지 아니면 좀 멀리 가든지. 가까우면 여러 모로 편리하지만 네가 바라는 걸 이룰 지가 미지수고. 강남에서는 50만원부터 시작하면 될 걸. 이만 한 방 정도가 될 거야. 두 팔로 허공에다 선을 그으며 말했다. 80만원 내외면 혼자 지내기에 꽤 괜찮은 오피스텔 까지도 구할 수 있을 테고. 80만원이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비치는가 싶더니, 꽤 괜찮다는 표현에는 얼굴이 밝아졌다. 비싸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자유의 값이겠지, 뭐. 집에 있으면 생필품 살 일이 없지만, 나오면 다 구입해야 되고. 공과금도 내야하고. 이 모든 게 자유를 얻는 대가겠지.



*



일요일 오전, 찍찍이 먼지제거기를 굴리며 방바닥을 훔쳐냈다. 아침마다 하는 일이지만 휴일엔 구석구석까지 팔을 뻗는다. 매일 훔쳐대도 어디선가 등장하여 활발하게 움직이는 먼지다. 녀석들의 활동 범위에 감탄하는 사이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청소한지 두 시간 만에 다시 찍찍이를 돌렸다. 금방 닦았는데도 눈에 먼지가 보여서다. 이내 하얀색 찍찍이 스티커에 검은 먼지가 잔뜩 묻었다. 이건 먼지가 아니라 이물질인데, 뭘까?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의심쩍은 소파 위에다 찍찍이를 돌렸더니, 찍찍이에 작은 검은색 점들이 잔뜩 박혔다. 소파가 낡아 검은색 인조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에게서도 각질이 떨어진다. 아! 모든 것들이 낡고 늙는구나. 그것들 모두가 낡고 늙음의 흔적을 먼지와 이물질로 표현하는 거구나.



어제는 몸보신을 한다고 민어탕을 먹었다. 국물까지 남기지 않느라 배불리 먹었다. 과식한 이튿날 아침엔 절식하거나 소식을 하는 편이라 오늘 아침식사는 간단히 먹었다. 간단한 식사라 해도 손 가야 하는 일은 있다. 달걀을 부쳐야 했고, 과일도 씻어야 했다. 접시와 컵을 사용했으니 설거지도 당연지사. 휴일이라 세탁기도 돌렸다. 수건 빨래를 하며 베개 커버도 벗겨 세탁기에 넣었다. 90분 즈음 지나면 세탁기가 삐삐 소리를 내어 완료를 알린다. 나는 방금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굼 버튼을 누르고 왔다. 수건에서 좋은 향기가 나면 기분 좋으니까. 15분 후면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야 한다. 글을 마무리하고 샤워할 때에는 욕조 청소를 할 생각이다. 휴일은 소소한 집안일을 하는 날이다. 휴일에 부지런을 떨어야, 평일은 찍찍이만 돌리고 분류 수거 정도를 하면서 지낼 수 있으니까. 설거지는 기본이고.


*

 


이 나이 먹도록 늦게 들어간다고 잔소리 듣는 게 말이 돼, 라고 말하던 그녀가 떠오른다. 잔소리를 비롯한 엄마의 간섭, 가족끼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등은 모두 부모님께 얹혀사는 대가일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월세를 내지 않고, 생필품도 사지 않고, 엄마가 해주시는 집 밥을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만큼의 자유도 사라진다. 자유를 되찾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월세나 전세대금 뿐만 아니라 공과금을 지불하고 여러 생필품에도 돈을 써야 한다. 시간적 대가도 무시할 수 없다. 청소 설거지 빨래라는 집안 일 기본 3종 세트에 적잖은 시간을 써야 한다. 건강하고 깨끗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게으름도 얼마간은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자유 속에서 살게 될 것이고,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이 조금씩 안 좋아질지 모른다. 대가를 치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는 일이 불공평하고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모든 것을 공짜로 받던 아기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에 대가를 치러야하는 노인으로 늙어가는 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시간, 에너지, 물질적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 주고받음을 인생살이의 지혜로 삼으면 점점 더 행복해질 것이다. 공짜 자유는 없다.


IP *.223.38.1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