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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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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4일 00시 11분 등록


딸이 대학에 들어 간 뒤로  해마다 여행을 갔습니다. 캄보디아, 베트남, 터키, 이탈리아와 주변국을 거쳐 올해 동유럽중심의 여행..... 기간도  10일, 20일, 40일로  늘어나다가  배짱껏 3개월에 이르렀는데 그간의 여행을 통털어 이렇다할 만한 태클을 겪은 것은 단 두 번이었습니다. 한 번은 작년에 베네치아에서 겪은 변상사건으로, 욕조에 붙은 칸막이가 갑갑해서 살짝 밀었더니 그만 한 쪽이  떨어진 거에요. 실리콘 한 방이면 될 일이었지만 낯선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가슴이 철렁했지요. 인건비도 비쌀 것이고  바가지를 쓴다해도 아무런 힘없는 여행자의 신분이라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지요. 결과는 80유로 변상. 조그만 호텔의 직원은 너무 비싸다는 우리에게 수리업자를 연결해 주었고, 그는 우리가 직접 가져다 설치하면 50유로에 해 주겠다며, 처음에 부른 금액에서 10유로를 할인해 주었습니다.


 


올해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도 요령부득인데요, 길을 찾느라고 약속한 시간에 30분 늦었는데 아파트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 거에요. 그 건물에 살지 않는지라  달리 연락할 방도가 없구요 . 혹시 몰라 주소가 쓰인 건물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그 곳을 떠났지요.  당최 그 동네에는 간판이 없어서 짐 들고 다니며 숙소 구하느라 우여곡절 끝에 하룻밤을 자고 나니, 우리가 예약을 무단으로 불이행했다며 예약금액의 50%를 청구하겠다는 메일이 왔구요.  원래 그것이 그 숙소예약업체의 룰이고, 우리의 계좌정보가 들어 가 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었지요.  발빠르게 숙소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는 등 수없이 메일이 오간 끝에 예약업체는 우리 손을 들어 주었지만, 그러기까지 신경깨나 써야 했습니다. 아파트 주인은 끝까지 우리 잘못이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 왔는데, 약속에 늦은 게스트가 전화를 했으면 받아야지 처음부터 수수료를 노린 것인지 이상한 일 한 번 겪어 보았네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험악한 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지요. 저도 작년에 이탈리아에 가기 전에  진심으로 걱정한 기억이 나네요. 나폴리에서는 현지인들도 복대를 찬다든지, 집시들이 우르르 몰려와 신문과 박스같은 것으로 여행자의 얼굴을 가리고 마구 더듬어 털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웬걸 현지에 가 보니 집시 구경하기도 쉽지 않던데요? 어디에 가든 소매치기는 챙겨야 하겠지만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지요.


 


오히려 유럽여행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는 여유와 안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으면 98%의 운전자가 차를 세워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운전자가 차를 멈추는 것이 미안해서 기다리지 않고 그냥 무단횡단을 할 정도였지요. 어느 바닷가에서 상의를 탈의한 젊은 여성이 있어도 흘낏거리는 사람 하나 없어 개인의 영역에 상관하지 않는 무심함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는데요. 내가 그렇듯이 다른 이에게도 불순한 동기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평화로움, 나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한 다른 이의  행동에 대한 무심함,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공권력이 중재해주리라는 신뢰가 있기에 경계심과 적의대신 여유와 편안함이 자리잡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일 터지는 사건에 정신이 없네요. 아이들 다 키웠어도 슬프고 안쓰럽고 울화통이 터져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학교와 군대처럼 공권력이 일차적으로 관리하는 곳에서 터지는 사건이 이 정도니, 가정처럼  공권력이 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또 얼마나 많이 은폐되고 있을지요. 우리 사회의 안전도는 별개의 문제구요, 여행지에서 사고에 접할 확률은  국내에서 사고에 접할 확률을 넘지 않는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문득  작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제 강좌에 왔던 분이 생각나네요.  이민자인 그녀는  오랜만에 모국에서 두 어개의 강좌를 들으려고 왔는데, 길을 물어보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경계를 하고 심지어 도망가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지하철 화장실에  새로 산 핸드폰을 놓고 나온 지 20분 만에 없어졌더라며,  신고를 하기 위해 행인의 핸드폰을 빌리는데도 너무 힘이 들었다며 씁슬해하던 그녀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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