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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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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4일 10시 11분 등록

 

보름 전쯤의 일입니다. 비가 막 그친 여우숲의 오후, 한 가족이 여우숲으로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딱 보아도 그냥 지나다가 들르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여우숲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자고 결심한 첫 날이었습니다. 백 미터, 오십 미터, 이십 미터! 외국인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곁에는 한국인 여자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아이 한 명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외국인 남편이 말을 이었습니다. “이곳에 숲도 있고 카페도 있다 길래 올라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카페는 운영하는 분 사정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 야외 테이블에서 제가 커피를 손으로 내려 드리겠습니다.” 여우숲의 카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지는 오래되었고, 나는 그것을 늘 걱정하고 고민했습니다. 별도 운영자를 선정해 카페 공간을 빌려준 것이라 운영자의 의지를 거슬러 카페를 운영할 해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깊게 방황하면 간결해지는 법. 굳이 카페가 지금 갖춰진 저런 형태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주인이 공간을 비우면 그 자리에 책을 꽂아 숲 속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가고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게 하자. 카페는 반 셀프 형태로 운영하면 좋겠구나. 커피는 핸드 드립으로 마실 수 있게 핸드 드립 전 세트를 구비해 두고, 직접 체험하게 한다. 그 외의 차는 다기 세트를 마련해 제공하고 직접 차를 내려 마시는 즐거움을 주자.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과정조차 체험이 되게 하자.’

 

그날은 그렇게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 둔 커피 드립 세트를 처음으로 꺼낸 날이었습니다. 나는 거름종이를 접어 도자기와 유리 서버에 앉혀놓고 핸드 밀로 커피를 갈았습니다. 방문객 모두는 바사삭 바사삭 소리를 따라 커피를 가는 장면에 몰입했고, 나도 그랬습니다. 끓인 물을 주전자에 담아 원을 그리며 천천히 커피를 내렸습니다. 비 그친 숲 공기에 커피 향이 느리게 퍼졌습니다. 아이를 위한 음료도 하나 챙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된 인연, 그들이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기쁜 사연, 프랑스의 자연교육과 자녀교육, 한국 정부 및 기업과 몇 년 동안 일해 본 프랑스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언참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바다와 그녀가 낳아 키워놓은 새끼 강아지에 꽂혀 한참을 놀던 아이가 심심해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위한 놀이를 제안했고, 모두는 그 놀이에 동참했습니다. 자연물 몇 가지를 이용해 한 삼십 분 놀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특별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 편지에서는 그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놀이와 창조성, 자연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담아보겠습니다.

 

각설하고, 무언가 자신의 세계를 이뤄가는 삶을 도모할 때 형식보다 앞서 채워야 할 것이 내용이라는 점, 전하고 싶었습니다. 카페의 외형은 형식입니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카페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에 불과한 카페는 넘칩니다. 여우숲만의 카페가 담아내면 좋을 내용은 먼저 숲과 자연, 온기 있는 사람, 스스로 추구하고 창조함, 더불어 이뤄감 같은 것이라 믿게 됩니다. 그대 이 숲으로 오시는 어느 날, 그대가 내려주시는 차를 내가 먹거나 내가 내려드리는 차를 그대가 드실 수 있는 타이밍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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