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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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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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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0일 22시 48분 등록


 

오늘 구미○○초등학교에서 특강이 있다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우리 원이랑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라서 혹시 시간이 된다면 잠깐 차 한잔하시면 어떨지요? 짬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초대받은 학교로 출발을 서두르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잠시 뒤 도착한 문자 내용이 저랬습니다. 문자를 보내신 분은 유치원 원장님, 벌써 몇 년째 교사연수와 학부모 강연 등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초대한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강연이 네 시 반 경에 끝날 예정이니 끝나고 유치원으로 찾아뵙는 게 어떨지요?” 그분과는 그렇게 차담을 나눌 시간을 정해놓고 초대받은 학교에서 강연에 빠져 기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 강의 중이신지요? 잠깐이라도 뵈면 좋겠습니다.” 예정한 시간을 훌쩍 넘긴 다섯 시 반, 막 질의와 응답, 사인을 마칠 즈음 그분이 기다리다가 보내온 문자였습니다. 미안하여 얼른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곳 교장선생님과 장학사, 담당 선생님이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하시네요. 교장선생님과 알고 지내시는 사이라면서요? 함께 저녁하시는 건 불편하실까요?” 나는 예상치 않게 복잡해진 저녁 스케줄을 그렇게라도 묶어보려 했습니다. “저녁까지 유치원에 행사가 있어서 식사는 어렵겠고 드릴 것이 있으니 잠시라도 들렀다가 가시면 좋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황급히 유치원으로 들렀습니다. 깊이 있는 선사(禪師)처럼 맑은 표정을 가진 원장님과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가진 여류 동화작가 부원장님 내외는 유치원 대문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두 분은 내게 보따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돌아와 오늘 아침 펼쳐본 보따리 안에는 참 아기자기한 책 선물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두가 동화책이었습니다. 그 중 여우나무를 꺼내들었습니다. , <여우나무>. 부부는 이 책을 읽다가 나를 떠올렸고, 꼭 선물로 전하고 싶었다 했습니다. 붉은색의 늙은 여우 한 마리와 감색 열매를 단 채 단정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 그 아래 예쁜 글씨로 여우나무라 쓰여진 표지를 열었습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글과 그림으로 쓰여진 동화책 이었습니다. “옛날 옛날에 여우 한 마리가 다른 동물들과 함께 숲에서 살았어요.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쪽에서 여우는 스스로 숲 속 공터로 찾아가 그곳에서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여우가 숨을 거둔 그 주위는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며 눈이 가만가만 부드럽게 내려 여우의 죽음을 덮어주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고 그림도 그 쓸쓸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는 울컥 슬픔이 솟구쳤습니다.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와 날개 한 쪽을 펼쳐 눈감은 여우를 덮어줍니다. 그의 오랜 친구들이 하나씩 여우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다람쥐와 족제비, 곰과 사슴과 새, 토끼와 생쥐여우와 기억을 나누었던 친구들은 모두 말없이 여우 곁을 지키며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부엉이가 침묵을 깨며 여우와의 추억을 주억였습니다. 부엉이는 여우와 함께 떨어지는 낙엽을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를 했던 기억을 펼쳐놓았습니다. 생쥐는 여우가 얼마나 해 지는 광경을 좋아했는지를 추억했고, 곰은 어느 봄에 여우가 아기 곰들을 돌봐준 기억을, 토끼는 술래잡기하던 날들을, 다람쥐는 쌓인 눈 속에서 도토리를 함께 파내주던 여우를동물 친구들은 저마다 그렇게 함께했던 좋은 날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기억을 나누며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우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조그만 오렌지 나무 싹이 올라와 자라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전환됩니다. 여우의 죽음을 함께 지키는 밤새 나무는 더 자라고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며 나무는 더 자라고 동물들은 여우에 대한 추억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추억이 많아질수록 나무도 점점 더 높이 자라고 마침내 아주 커다랗게 자란 튼튼한 여우 나무. 숲 속 동물들 중 누구는 그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보금자리를 틀고, 다른 동물들은 그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는 이야기, 그렇게 여우 나무는 자신을 사랑한 모든 동물들의 든든한 힘이 됐다는 이야기, 그래서 여우는 모두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책을 덮은 뒤 가슴으로 당겨 가만히 안았습니다. 새 책 냄새가 좋았습니다. 이 푸른색의 얇은 동화책 한 권이 나의 식전(食前) 가슴을 뜨겁게 데웠습니다. 책을 끌어안고 오랫동안 떠나신 스승님을 생각했습니다. 함께 나눈 장면과 장면들로 나의 가슴에 살아계신 스승님, 누군가에게는 말씀과 글로 살아 계실 스승님! 그리고 구미의 그 유치원 원장 내외분이 이 책을 선물로 보낸 뜻을 생각했습니다. 아마 여우숲에 사는 당신, 당신도 여우처럼 살다가 여우나무가 되기 바랍니다.’라는 뜻이겠지요. 오늘은 전남 곡성으로 가는 날, 오고가는 길 위에서, 강연장에서 나는 새삼 마음을 다졌습니다. ‘턱없이 부족지만, 그렇게 살려 애쓰겠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덥히고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기쁜 삶, 놓치지 않으려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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