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157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12월 17일 18시 57분 등록

 

어제 오후 나는 모처럼 기차를 탔습니다. 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초대한 강연회 자리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연중 제법 많은 강연을 소화하지만 나의 경우 그중 독자들의 초청 강연회가 가장 설레는 자리입니다. 그 설렘은 아마도 이미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대구역에는 눈발이 약하게 날리고 있었습니다. 손과 목 언저리가 시렸습니다. ‘아차, 장갑과 목도리를 하지 않고 나섰구나.’ 역사에 마련된 중소기업제품 판매관에 들러 목도리 하나를 장만한 뒤 목에 둘렀습니다. 목도리 한 장 두르자 몸도 마음도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마중 나온 모임 대표를 만나 강연장 근처의 복요리 집으로 향했습니다. 매운탕이 속을 뜨끈하게 데워줬습니다. 모임 대표는 활기와 열정이 넘치는 30대 청년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 대표는 강연장을 정리했고 나는 근처 역사 주변을 걸었습니다. 동대구역 주변은 벌써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공사중입니다. 모임 대표는 내년이면 저곳에 동양 최대의 백화점이 들어설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게다가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공사도 겹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로수로 심겨진 양버즘나무들이 벌거벗은 채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해마다 큰 가지들이 모두 잘려 전선 아래까지만 자라는 운명으로 살아야 하는 그 나무들이 참 추워보였습니다. 나무와 전선 너머로 모텔들이 즐비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방 ○○모텔의 간판이 시선을 당겼습니다. ‘그래, 하늘이 보고 싶겠구나. 이 복잡함 속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위로일까.’ 모텔들 옥상과 건설중인 고가도로, 그리고 역사의 지붕들 끝으로 연결된 공제선 오른쪽으로 초승달이 보였습니다. ‘아 약하게 날리던 눈발이 멈췄구나. 밤 하늘색과 달빛 참 좋구나. 하늘 열리는 모텔 방에 들어선 사람들은 저 밤 하늘색과 달빛을 누리고 있으려나?’

 

삼십여 명 남짓 모인 청중들은 뜨겁게 반겨주었습니다. ‘허락한다면 오늘 나는 내가 쓴 책의 내용으로 강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이야기는 조금만 담고 오히려 오늘 드릴 말씀은 어쩌면 언젠가 새로운 책으로 펼칠 내용이 될 것입니다.’ 미리 만나볼 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청중들은 더욱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좋은 삶을 사는 몇 가지 방법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시간은 늘 짧게 느껴지지요. 마지막 기차를 예매해서 넉넉하게 시간을 할애해 두었다고 여겼지만 결국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만큼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모자란 시간 속에서도 나는 강연의 마지막 주제,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강조한 그 방법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샘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야 말로 진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기실 어느 영역이건 하나쯤은 스스로 가히 예술적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을 받고 태어났으니 그것을 찾아 노니는 삶의 여행을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자주 신비를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강조처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예술과 과학의 근본을 이루는 진정한 모태입니다.” 최고 반열의 과학자조차 강조한 그 신비의 체험은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쪽을 지향할 때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신비는 물질성보다는 비물질성 안에서 반짝이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향기와 소리와 빛, 계곡을 채우는 안개와 산정의 구름 같은 것은 어떤가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쯤 될까요? 신비의 극점에 아무런 형상도 갖추지 않은 신이 계시지 않을까요?’

 

쉰 살을 앞두고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삶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고가를 놓아 더 빨라지는 것이나 가장 광대한 백화점을 갖춰 더 큰 풍요를 추구하는 것, 그 방법은 찬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미 그 방법은 동시에 숱한 그림자를 동반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방그 안온한 방 안에서 바라보는 초승달이나 별이 전해주지 않는 놀라운 감각적 기쁨과 고원한 신비가 너른 들판과 밤 숲과 작은 섬의 바닷가 하늘같은 곳에 있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그것을 삶에 더 자주 모셔 오시기 바랍니다. 욕심이 과해서 결국 질문도 받을 수 없을 만큼 빠듯하게 강연을 마쳤고 우리는 기쁘게 헤어졌습니다.


IP *.120.7.3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