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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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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6일 00시 22분 등록

나이를 먹는 게 괜한 책임감의 무게로 다가오는 시점입니다. 그래서인가요. 평소와 달리 길가에 가로수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겨울의 나무는 갱년기 중년 여인의 벌거벗은 나신을 닮았습니다. 초란한 몸매에 그나마 이제 몇 개밖에 남지 않은 가지의 이파리들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로. 그 모습으로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맞습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한 잎까지 남김없이 떨어뜨림은 생존을 위한 것이리라고. 스스로의 죽음. 그 죽음이 찬란함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이 순리일진데 나는 아직 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사람의 얼굴을 계절별로 의인화한 작품입니다. 그중 겨울이란 형태는 흉측한 짐승의 녀석으로 표현됩니다. 섬뜩합니다. 인생사의 쓰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듯해서이지요. 싫든 좋든 우리는 그 현실과 대면합니다. 나무가 그러하듯 다시 다가올 봄이라는 희망의 표징을 만나기위한 필요불가결의 과정이기에 그렇습니다.


어수선. TV 뉴스에서는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 공방이 한창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지만 실은 자신의 이기심이 먼저입니다.

어수선. 서울 명동 거리는 성탄절의 인파로 넘쳐있습니다. 상인들의 호객행위. 들뜬 마음의 시민들. 연말입니다.

어수선. 매스컴에서는 연일 대기업을 비롯하여 구조조정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IMF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임원부터 말단 사원에게까지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예외가 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떠나는 이와 남는 이. 서로가 시린 가슴으로 대합니다.


고요. 책상, 스탠드, 작은 침대하나가 전부인 공간. 시간을 함께합니다. 나의 뱃속과 머리는 꽉 차있습니다. 그 차있음으로 제대로 된 배출이 되지 않기에 생각이 많고 밤마다 여러 꿈을 헤아립니다.

쉽게 버리지 못함은 가진 것이 많아서입니다. 쉽게 떠나지 못함은 꽉 쥐고 있는 무언가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계속 뒤돌아봅니다. 떠나더라도 어떤 것을 채워올 것인지요. 아니 무엇을 더비울것인지요.

현재의 그대로를 가지고 갑니다. 외양, 성격, 가치기준들.


눈이 비처럼 내리는 날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피정(避靜). 명목은 한해를 정리하고 에너지를 채워오기 위해서인데 쉽지 않습니다.

하는 일이라곤 넘치는 졸음의 손을 마주잡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감실을 바라보며 그렇게. 무엇을 하는 건 없습니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현상을 내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한 생각이 미치면 펜을 들고 노트에 이처럼 긁적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편안해지면서 절대자란분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기도란 이런 것인가요. 물에 몸을 맡긴 채 푹 잠겨있는 느낌. 나의 비움이 그분을 거주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성당. 이곳은 비어있습니다. 이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붓을 들고 하얀 도화지위에 물감을 칠하고 그리고 싶은 데로 그립니다. 그분과 나의 대면자리. 영혼의 바다에 두둥실. 그 가운데 빠져듭니다. 기도는 이런 것. 그냥 그분의 한가운데 조용히 잠기는 것.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물장구질, 잠도 자고 안깁니다. 그렇구나. 당신의 품안에 내가 안기는 것. 그냥 그 안에 젖어드는 것. 그리고 행복하기.


수도자들은 기도시간외 소임지에서 주어진 노동을 하지만 방문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을 취합니다. 성당에 머무르거나 산책을 하거나 개인의 취향대로. 그러다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글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립니다. 문자 온 게 없는지. 음악을 틀어봅니다. 그러다 배낭을 챙겨 다시 서울고 가고 싶은 생각도 일어납니다.

단조로운 생활. 혼자의 시간, 고독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이 있을시 어떤 방법으로 더 좋은 가능성의 몫에 투자할 것인지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더디게 갈 때, 그 더딤은 내가 주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곳에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에 더딘 어느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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