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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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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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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8일 09시 46분 등록

몇 주 전의 일입니다. 구본창 선생의 책을 읽다가 황현산 선생의 <밤은 선생이다>를 펼쳤습니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구본창 선생의 사진 아닐까’ 싶었습니다. 맞았습니다. 나는 ‘조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사진 문외한인 내가 사진만 보고 누가 찍었는지 맞췄다는 점, 또 하나는 구본창 선생의 책을 읽다가 사진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에서 그의 사진을 만난 것입니다. 두 가지 중 하나는 우연으로, 다른 하나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문득 펼친 황현산 선생의 책에서 이전에 읽고 있던 구본창 선생의 사진을 만난 것은 우연이고, 그 사진을 보며 좀 전에 읽은 사진가를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사진가는 열 명이 채 안 되고, 사진 보는 나의 안목을 감안하면 이런 설명은 더욱 타당해 보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구본창 선생의 사진이 보여주는 특성과 분위기, 그게 무엇이든 고유한 뭔가로 인해 나처럼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사진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 역시 타당합니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와 대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본창 선생 역시 자신의 작품 세계가 있고, 오랜 시간 추구해온 주제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입니다. “잘 들리지 않는 떨림이나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자국들에 마음이 간다”고 합니다.


프로 사진가는 대상과 교감하는 고유한 방식, 그리고 자신의 개성이 반영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가 세 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대상을 찍어도 각자의 시선에 따라 사진 속 모습과 사진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황현산 선생의 책에서 사진을 보며 ‘봄날 농촌, 일상의 평범한 광경이네’ 하다가 멈칫했습니다. 구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면을 잡아낸 시선, 그리고 이런 느낌이라면 구본창 선생의 사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구본창 선생은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들,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들 그리고 생명을 들고 나는 숨. 그런 찰나의 대상물을 촬영할 때 내가 느끼는 교감은 일정량의 에너지로 필름에 스며든다고 나는 믿는다. 만약 어떤 사진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면, 안에 담긴 대상에서 비롯해 필름 속으로 숨어든 에너지가 인화지에 혹은 책에도 조금씩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본 사진을 보고 사진가를 맞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사진에 스며든 구본창 선생의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현산 선생은 어떨까요? 그는 봄날 농촌의 풍경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꽤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구본창의 시선은 새롭고 용감하다”고, 무엇보다 “눈 한 번 여겨본 적도 없이 늘 지나쳐가기만 했던 현실의 깊이가 그만하다”고 감탄합니다. 두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 황현산


“내가 찍으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란 있는 듯 없는 듯 너무도 조용히 존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은 것들일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나는 그것을 듣고 싶고, 그러한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따뜻한 눈이 있어야 보이고 읽힌다. 아마도 나는 이런 애틋한 감정과 기억들을 기록하고 간직하려고 사진가가 된 모양이다.” - 구본창


맨 위에서 나는 ‘조금’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크게 놀라지 않고 ‘조금’ 놀란 이유는,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조지프 캠벨이 강조한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과 ‘천복(bliss)’에 대해 생각하다가, 일상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것에 관한 책을 펼쳤는데 거기에 캠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삶의 행위가 열망에 맞춰질 때, 우리가 눈여겨보는 것은 반복되는 경향을 띤다”는 구절을 봅니다. ‘흥미롭네’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도착합니다. 캠벨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입니다.


이쯤 되면 삶이란 것에 인과성과 우연 이상의 어떤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칼 구스타프 융이라면 ‘동시성(synchronicity)’으로 설명하고, 생물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는 ‘형태 공명(Morphic Reson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공명(resonance)’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들에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열심히 하는 활동이고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조지프 캠벨은 내 마음속 영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렇다면 관심은 있음에도 대충 보고 넘어가는 주제, 마음을 쏟지 않고 건성건성하는 활동, 이런저런 이유로 소홀히 넘기는 인연 안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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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저, 공명의 시간을 담다, 컬처그라퍼, 2014년

황현산 저,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년



* 안내 : 강미영 연구원의 ‘사진으로 쓰는 책 : 내가 아끼는 순간 100’ 강좌

<혼자놀기> <숨통트기>의 저자 강미영 연구원이 ‘사진으로 쓰는 책 : 내가 아끼는 순간 100’ 강좌를 진행합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사진과 글로 표현하고 싶은 분들,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강좌입니다. 자세한 강좌 소개는 여기를 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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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11:05:53 *.37.122.77

승완의 섬세함과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네.

구본창 선생님의 책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ㅎㅎ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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