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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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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0일 11시 59분 등록

어제 화순에 다녀왔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여는 인문학 서당에 초대해 주어서입니다. 화순은 행정 단위가 군입니다. 그 도서관은 아담했지만 도서관다웠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나 깊은 정원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일겁니다. 하지만 열람실에는 시험이 끝났는데도 학생들이 들어앉아 책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밥 때인 데도 몇몇 어른들이 서가를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화순에는 이 공동도서관 말고도 도서관이 하나 더 있다고 했습니다.


작은 강연장은 가득 찼습니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과 함께 참석하신 선생님도 계셨고 군의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교육개혁가도 참석했습니다. 여든 가까운 연세로 보이는 어르신도 그 빽빽한 공간에 꼿꼿이 앉아 세 시간 가까운 강의를 고개를 길게 빼가며 들어주셨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내가 겪어본 그 어느 집단과 연령, 대상보다도 자유롭게 사유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물으면 무엇이든 대답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쯤 되면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않는 것이 강의장의 일반적인 풍경인데, 화순의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재기발랄하고 엉뚱한 대답이 쏟아질 때마다 우리는 파안대소했고, 나는 깊은 칭찬을 보냈습니다. ‘, 여기에 숲이 있구나. 사람이 이루어가는 작은 숲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숲에는 누구도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숲은 저절로 푸르러집니다. 볼품없이 작은 지의류나 풀에서 시작한 맨땅이 세월이 지날수록 저절로 깊어집니다. 더 다양한 풀과 나무가, 더 크고 넓고 높은 공간이 숲으로 변해갑니다. 볼품없이 작은 벌레에서 시작한 동물이 다양한 나비와 나방으로, 아주 많은 벌의 종류로, 작고 큰 새들로 풍성해집니다. 누구도 숲이 그래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나 지향을 세운 적이 없는데, 숲은 어김없이 그렇게 깊어가고 다양해집니다. 나는 그 비밀이 무엇일지 주목해 왔고 여전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를 알아 우리 인간의 삶과 사회에, 문화에 차용하는 것을 연구의 한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가 알아챈 그 핵심 비밀의 하나를 오늘 말하면 그것은 “Alone, but not alone”입니다. 홀로이지만, 홀로이지 않은 삶. 나를 위해 살지만 결코 나만을 위해서 살지는 않는 모습을 표현하는 나의 작문입니다. 저를 위해 피어나는 꽃이 꿀과 꽃가루를 나누어 열매로 바뀌는 모습. 저를 위해 피어낸 잎사귀가 숲 공동체의 땅을 뒤덮는 낙엽이요 퇴비로 쌓이는 모습.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온전히 죽음을 통해 다시 숲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생명이 창발적으로 터지고 확산되는 모습. 그 관계와 순환의 공평함이 바로 핵심 비밀의 하나인 것을 압니다.


내가 사는 괴산도 군입니다. 도서관이 하나 있지요. 커다란 느티나무가 도서관 입구에 서서 책과 사람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도서관 시설은 낡았고 책은 부족하고 사람의 발길을 부르거나 붙드는 매력은 크게 없는 못하는 공간입니다. 내 눈에는 우리 군은 아직은 경제적 성장을 가장 중요한 지향으로 삼고 있는 곳으로 느껴집니다. 이것은 숲에 커다란 나무들을 먼저 심어두면 그 나무가 피우는 꽃과 낙엽이 숲을 깊어지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를 이루어 ‘낙수효과’로 길어 올린 성장방식과 다르지 않은 패러다임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 방식은 반드시 성장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창의를 넘어 창발이 터져야 숲은 깊어집니다. 다양함과 자유함이 흘러야 가능합니다. 홀로이지만, 홀로만을 위해 삶과 경영을 집중하지 않는 패러다임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함께 깊어질 줄 아는 숲의 비밀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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