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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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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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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2일 00시 58분 등록


자마르디 052.JPG



불가리아에  와 있습니다.  2달간  10개국 13개 도시를 여행했는데,  그 중  최대의 발견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Wien'과  헝가리의 작은 마을 '발라톤 Balaton'입니다. 빈에 대해서는  'The capital  of music '이나 '2000년간 국가를 넘어서는 수도'라느니, '거대한 정신의 덩어리'라느니 놀라운 찬사가 이어 집니다. 인구 200만을 겨우 넘는 작은 도시가 어떻게 그만한 역사와 문화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 여고때 지겹기만 했던 세계사에  호기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슈베르트와 모짜르트, 요한 스트라우스가 태어났으며, 베토벤이 주로 활동한 도시라는 사실 만으로, 빈에서는 생전 관심이 없던 클래식에 귀가 쫑긋거립니다. 아직 클래식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서 오페라만 세 편을 보았는데, 어차피 내용이나 아리아를 잘 모르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더 귀담아 듣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실전의 위력이겠지요, 코앞에 오케스트라가 있으니, 지휘자의 손길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연주자들의 몸짓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덩달아서 웅장하거나 미세한 음률이 귀로 쏙쏙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음치입니다. 심지어 가요조차 아는 노래가 별로 없을 정도로  귀가 막힌 사람이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요?

 

저는 빈을 '나의 도시'로 명명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언제고 맘편히 스며들 수 있는 도시 세 군데를 발굴하는 것인데, 그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한 것이지요. 빈에서는 자꾸 공부가 하고 싶어집니다. 세계사를 통해 기본적인 얼개를 짜고, 클래식과 오페라를 알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며, 세기말의 두 악동 클림트와 에곤쉴레를 비롯해서 미술에도 정통하고 싶어집니다. 나이들어서 할 일 중에 문화예술 공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제게 빈이 제대로 기름을 부어주네요. 전에는 마음 뿐이고 말 뿐이었다면,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을 만난 지금은 더 이상 게으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빈이 문화예술 공부의 시발점이라면, 발라톤은 해양스포츠로의 초대입니다. 뜬금없이 웬 해양스포츠냐구요? 만일 그대가 나만큼이나  몸을  쓰는 일에 서툴고, 더군다나 바다에서 하는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발라톤에서는 누구나 성큼 욕심을 내게 됩니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지요. 대신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을 달리면 바다만큼 큰 발라톤호수를 만나게 됩니다.  아득히 먼 곳에 요트가 떠 있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것은 바다와 같지만, 이 호수의 비밀은 가공할 만큼 얕은 수심에 있습니다. 해안에서 백미터쯤 나아가도 성인의 허리 밖에 오지 않는 수심덕분에 저는 난생 처음 카약과 윈드서핑에 욕심을 내 보았네요.

 

늘 바라보기만 하던 바다가(사실은 호수지만)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놀이의 현장이라는 경험은 정말 신나고 참신했습니다.  이 곳에서라면 그 누구라도, 재미있고 손쉽게 해양스포츠에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 하나를 없애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이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단지 물과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인지 제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거기에는 두려움 없는 세상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은 던져버리고,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은 하나 더하는 것, 그것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상상은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 정도로 발라톤은 만인에게 열려 있었고, 만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가 카약을 몰고 나가 한참을 놀다 오는 곳, 누군가 서핑보드에서 떨어져도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 곳, 중년과 노년은 물론 헌헌장부들도 맥주 한 캔 들고  먼 곳까지 물속 산책을 가는 곳, 깔고 누울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는 곳, 이제 여름에는 발라톤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전거나 수영처럼 기초적인 운동에도 바싹 가까워지겠지요.

 

돌아가면 할 일이 잔뜩 생겼습니다. 사람은 숙제 없이는 못 사는 존재인가 봅니다. 인생의 짐에서 다 풀려나 어지간히 자유로워졌는데, 막상 이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막막한 거에요. 그럴 때 여행이  다시, 욕망과  과제를 던져 주었지요. 그것도 아주 기꺼운, 즐거운 숙제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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