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348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7월 15일 13시 36분 등록

구본창 선생이 20대 후반 독일에서 사진 공부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는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의 졸업을 1년 앞두고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하던’ 독일의 사진가 겸 비평가 안드레 겔프케(Andre Gelpke)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당시 구본창 선생은 ‘형체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고 합니다. 자신의 실력과 작품에 대한 의심, 프로 사진가로써 자기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그를 사로잡았던 듯합니다. 겔프케는 그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좋은 사진들이야. 그런데 이 사진들은 어느 유럽 작가가 찍은 것인지 한국에서 건너온 유학생이 찍은 것인지 알 수가 없네. 한국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가 없어. 자네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


이 말이 구본창 선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본창 선생은 “그의 말은 그때까지 내가 느꼈던 허전함이 무엇이었는지를 한순간에 깨닫게 해주었다. 기쁨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 준 예리한 비평이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는 이미 다른 유럽 작가들이 시도했던 도시의 이미지들과 유사한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너만의 사진을 찍으라고 말했던 겔프케와의 인연으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의 감성과 뜻을 사진 속에 투영시키는 작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구본창 선생은 겔프케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과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개성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0년쯤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구본형 사부를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게 상처로 남은 집안일을 사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잘 살다가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집안 사정, 그로 인해 생긴 가족 내의 갈등,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상황에 관해서. 사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이미 5년쯤 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부에게도 여러 번, 때로는 글로, 때로는 말로 전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5년 내내 이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부가 짧게 한 마디 했습니다.


“승완아, 이제 너도 다 컸으니까...”


아마 사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 한 마디에 내 마음에 불이 켜졌습니다.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늪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왔습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내 마음은 시원하고 상쾌해졌습니다. 안드레 겔프케의 말에 구본창 선생이 ‘한순간에 깨닫게’ 되었듯이 나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문득문득 궁금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난 후, 나는 나름대로 답을 찾아냈고, 그 답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고민의 수준입니다. 고민이 깊다는 것은 그 문제가 절실한 것이고, 그만큼 그 문제와 함께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고민이 깊다는 것은 그 문제에 관한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이고, 고민이 깊어짐에 따라 그 문제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집니다. 그러니까 고민의 강도와 시간이 감수성과 수용력을 키웁니다. 예민한 감수성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놓치지 않고, 큰 수용력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줍니다.


두 번째 요소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한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말의 내용보다 누가 말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만약에 구본형 사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제 너도 다 컸으니까”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말이 그렇게 깊이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남 이야기라고 쉽게 말한다’고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구본창 선생이 안드레 겔프케를 좋아하고 존경했기에 그의 말의 무게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말 한 마디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한 마디의 내용이 자기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깨우치고 깨닫고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겔프케의 “자네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는 말에 구본창 선생이 한 순간에 깨달은 것은 자신의 사진을 찍을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기쁨’을 느낀 것은 자신의 사진 세계를 창조해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부의 한 마디 말에 내가 오랜 상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겔프케는 구본창 선생이 자기 사진을 찍을 때가 되었음을 알았고, 구본형 사부는 내가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듯합니다.

 

나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교육은 지식을 주거나 쌓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이미 있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그 안에 있음에 자각할 수 있도록 불 하나 켜주는 것, 자기 안에 있는 힘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20140617-1.jpg

구본창 저, 공명의 시간을 담다, 컬처그라퍼, 2014년



* 안내 : <치유와 코칭의 백일 글쓰기> 17기 모집

<유쾌한 가족 레시피>의 저자 정예서 연구원이 <치유와 코칭의 백일간 글쓰기> 17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본 과정은 100일간 글쓰기와 독서, 오프 세미나 등 밀도 있고 풍성하게 진행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를 클릭하세요.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