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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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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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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6일 15시 17분 등록


바르나7 037.JPG

                                                                              바르나 '씨가든'  도로에서 즐기고 있는 사람들


빈에 가시게 되면 호젓하게 쉴 수 있는 공간 하나 소개할게요. 오페라하우스 맞은편에  '알베르티나' 뮤지엄 뒷뜰인데요, 관광객으로 왁자지껄한 도심지 한 복판에 이렇게 고즈넉한 쉼터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노천카페를 지나 안쪽으로 쑥 들어가면 긴 벤치는 물론 평상까지 있어서 여독으로 지친 몸을 누일 수도 있습니다. 때이른 낙엽 몇 개가 사각거리며 굴러가고, 댕그랑 댕댕 이중주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쉬는데  마음가득한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이름난 관광포인트 찍기에 지치고, 상업시설에 하품날 때 빈의 햇살과  공기를 공짜로 누리는 기분이었지요. 게다가 뮤지엄의 화장실이 공개된다는 것!  유럽은 화장실인심이 야박하기 짝이 없어서 어떤 공중화장실도 1유로를 받는데, 우리 문화와 달라서 매번 약이 오르는데다 장기간 쌓이면 그것도 큰돈이라 횡재한 기분입니다.^^

 

불가리아 제3의 도시 바르나의 백미는 해안공원 깊숙히 숨어있는 도로입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길게 뻗어있는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부드러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미풍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사실 해안에는 식당이나 클럽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다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정도거든요. 흉물스러운 시멘트건물이 시야를 막고 있는 것을 보며, 이건 자연과 시민에 대한 횡포라고 흥분했답니다. 불가리아는 유적이나 자연이 많이 미흡해서 투덜대다가 자전거를 타며 조금 누그러진 마음을 확실하게 풀어준 것은 플로보디프로 이동하는 길이었구요.

 

 

버스로 장장 7시간, 무엇에든 젖어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처럼 그림같은 풍경은 아니지만, 끝이 보이지않는 평원에서 묵묵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옵니다. 이모작 추수를 끝낸 누런 벌판에 건초뭉치가  설치미술처럼 놓여 있고, 광활한 해바라기밭이 탄성을 자아냅니다. 아침햇살에 찬란하게 빛나는 해바라기밭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조촐한 휴게소에 멈췄을 때 마침 카메라가 짐칸으로 들어 가 있었는데,  속으로 불가리아에게 사과할 정도로 마음이 확 풀어져 있었지요.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럽고, 낮게 드리운 구름은 세상에서 가장 고운 실로 짠 비단처럼  보드랍고, 붉은 색 지붕의 농가 옆에서 풀을 뜯어먹는 말과 어린 아이들이 마차를 모는 모습은 정겨워, 카메라가 없다면 글 한 편으로 이 장면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이처럼  충만한 시간에 접할 때마다, 서울은 폭염이라는데 이게 웬 호사인가 어리둥절하고,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다면 그만한 신선이 또 있으랴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재와 도서관, 심지어 카페도 당신이 있는 모든 곳이 사무실이라고 하셨지요. 왜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행복할 수가 없냐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1인기업의 전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  글을 쓸 수 있게 되다보니, 글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마냥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를 새삼 확인했고, 앞으로의 삶에 내가 쓴 글 한 편이 내가 가진 전부가 되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낯선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제 생업인 글쓰기카페 업무를 볼 때는 가벼운 흥분을 느낄 정도입니다. 굳이 매여있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격입니다. 선생님과 비할 수 없이 조촐한 1인기업가지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글 쓰는 이에게는 버릴 경험이 없고, 시시각각 경험을 간추리거나 문장화하고 있으므로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작업실 맞습니다. 제가 자유로운 영혼만큼이나 소속이 자유로운 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서  빈이나 발라톤호수 같은 곳에 여럿이 함께 머물며 공저를 쓰는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일회성 관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좀 더 깊숙하게 내 삶으로 끌어안을 수 있고, 또 그 정도는 해야 진정한 모바일 작업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행은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것이지만, 좋은 것을 더 좋게 할 궁리로 불가리아의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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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15:48:57 *.195.249.107

아하. 글에서 활기가 마냥 느껴집니다.  싱그런 시간 마음껏 향유하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게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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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8:04:19 *.215.164.149

나는 미쳐야만 사는 사람인데 다행히도 여행덕분에 활기찬 3막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쓰기나 몸 만들기에도 조금씩 다가 서고 있으니, 더욱 건강해져야겠지요.

효우도 건강한 여름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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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22:18:23 *.156.195.154

마음을 풀고 즐기고 계신 모습이 선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그대로 느낍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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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8:05:41 *.215.164.149

내 느낌이 전달되었다니 내가 더 고마울 노릇이요.

양갱에게도 극적인 변환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겠네요.

우리가 말석이나마 창조의 전선에 서게 된 것을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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