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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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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4일 17시 13분 등록

 

 

어제 어느 어엿한 사람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밖에는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몇몇과 함께 가벼운 선물을 장만하느라 먼저 도착한 일행들보다 늦게 도착했습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그곳으로부터 거실, 주방으로 들어서는 모든 공간의 단정함이 주인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며 거실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안주인의 마지막 상차림이 엿보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아 나는 집안의 열려있는 공간을 기웃거렸습니다. 먼저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벽 공간에 걸린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작가들의 그림이 몇 점 걸려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색채감이 도드라진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주인의 성격과도 참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실과 붙어 있는 침실 입구, 작은 갈색 탁자 위에 열 맞춰 놓인 여남은 개의 목각 인형작품을 살피다가 내 시선이 딱 멈췄습니다. 목각 인형을 놓은 그 테이블에는 유리가 깔려있었는데 유리 아래에서 작은 엽서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엽서에는 오늘 나를 초대한 집주인이 자신의 아내에게 손으로 눌러쓴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소중한 당신께 / 세상에 내려주신 당신을 / 오래토록 아끼고 사랑해주고 싶어요.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그 남자의 영어식 서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 눈길을 멈추게 한 것은 바로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준 생일축하 엽서였던 것입니다. 그 엽서를 핸드폰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사진을 보니 어제는 발견하지 못한 그림엽서 한 장이 목각 인형 뒤 유리 밑에 놓여 있었군요. 누가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아내의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려넣은 그림엽서입니다.

 

허락받지 않았지만 문이 열려있는 서재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한쪽 반의 벽면에 책이 빼곡했습니다. 책상에서 가까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경영관련 책들은 아마도 남편의 책들 같았습니다. 책꽂이 상단과 책상에서 먼 쪽에 꽂힌 교육관련 책들은 교육학 박사인 아내의 책들로 보였습니다. 그 책꽂이를 향해 나는 또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책들이 아닙니다. 거기 놓여 있는 액자 속의 글귀였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家訓 / 먼저 웃고 / 먼저 사랑하고 / 먼저 감사하자

 

시간이 되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음식이 참 훌륭했습니다.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과메기가 식탁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감동적인 음식이 식탁 곳곳에 가득했습니다. 긴 사각 접시에는 정선 장에서 직접 사왔다는 곰취와 풋고추가, 정사각 접시 하나에는 돼지감자로 불리는 뚱딴지 뿌리가 각각 장아찌 요리로 솜씨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달래와 쪽파와 냉이를 넣은 전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특별히 냉이는 두 부부가 주말에 운동을 하러 갔다가 캐왔다고 하더군요.

 

주인은 모임의 분위기를 이끄는 솜씨도 탁월했습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적절한 주제에 각각 한마디씩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내게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소감 비슷한 말을 한마디 하라고 해서 수줍음 털어내고 겨우 몇 마디 했습니다. (사실 나는 내 강연 자리나 친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아니고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대충 이랬을 것입니다. ‘짧게 둘러보고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아 이 집은 좋은 삶을 사는 부부의 참 따뜻한 집이구나. 따뜻한 집에 초대해 주셔서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잘 지내보시죠.’

 

내가 왜 좋은 삶을 사는 부부의 참 따뜻한 집이라고 단박에 느꼈을지 궁금해 하는 주인과 일행 분들을 위해 나는 위에 쓴 것처럼 이 집에 들어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나는 진짜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아름다움의 척도는 소위 집의 크기나 브랜드, 그 안을 채우려고 소장한 어떤 물건들의 값 따위가 아닙니다. 나는 자신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침실 입구 테이블에 놓인 엽서에 담긴 이 부부의 마음, 서재의 한 구석에 새겨놓은 단정한 다짐, 이 식탁을 가득 채우도록 직접 캐고 담근 음식들모두 이 집 주인 부부가 직접 길어 올린 것들이었습니다. 이러니 두 분이 얼마나 균형 잡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입니까? 돌아가 나는 한참 생각할 듯합니다. ‘너는 아름답게 살고 있느냐? 너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으로 너와 네 집과 세상의 어느 자리를 밝히고 어떤 향기를 일으키고 있느냐?’”

 

돌아오는 길, 모처럼 내리고 있는 눈이 참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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