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57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모처럼 여우숲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다가오는 주말까지 일주일 가득 온전히 여우숲에 머무는 스케줄입니다. 물들며 말라가는 잎새들의 빛깔과, 바람을 만나며 내뱉는 이파리 소리로 여우숲의 낮은 가득 찹니다. 내 마음도 모처럼 평화를 만납니다. 밤은 귀퉁이를 조금씩 지워가는 달과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내 가슴에 또 다른 평화를 채웁니다. 이번 일주일 동안 나는 숲학교 오래된미래를 지키며 여우숲을 찾는 단체를 맞고 그들에게 가을숲을 만나는 시간을 돕고 있습니다.
오늘은 괴산읍내에 있는 한 중학교 학생 사십 여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 그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1.5km 가까이 떨어진 정류장에 내려서 여우숲까지 걸어서 올라 왔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딱새와 박새, 오목눈이 같은 텃새들 소리를 단숨에 소멸시켰습니다. 중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새들 노랫소리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약속보다 한 시간 먼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골 중학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학교 공부를 하는지 답을 찾아갔습니다. 공부해서 무얼 얻고 싶은 것인지 자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과 직업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결핍 또는 과잉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어떤 결핍과 과잉이 있으며 어떤 힘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10년 뒤, 스물네 살의 어느날을 상상하며 부모님께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여우숲 봉투에 담아 부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실 정중앙 자리에 인솔교사로 보이는 선생님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쉬는 시간에 다른 인솔교사께 확인해 보니 그분은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었습니다. 그분은 쉰 살에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남자였습니다. 어쩐지...... 그 학생은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눈빛은 가장 반짝였습니다. 과제를 가장 성실하고 진지하게 수행했고, 염색이나 숲체험 같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솔선수범하며 급우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마무리 했을 때 나는 그 학생의 10년 뒤 모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쉰 살에 중학교 1학년이 된 그 남자의 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회복지 요양원을 설립하고 세계인들과 함께 소외와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의 편지는 가장 특별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는 정말 생생한 그림을 편지로 써냈습니다.
나는 허락을 받아 그분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묵직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그 남자의 꿈과 도전과 삶이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붉은 가을 더 붉어진 하루였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56 | 예측능력이 향상되고 있는가 | 문요한 | 2013.09.25 | 2729 |
1955 | 런던에서 보낸 편지 | 한 명석 | 2014.05.17 | 2729 |
1954 | 좋아하는 시간대가 언제입니까? [1] | 연지원 | 2014.05.05 | 2734 |
1953 | 돈, 이자, 물가.. 모르면 당연하다 | 차칸양(양재우) | 2014.12.23 | 2734 |
1952 | 역사와 영웅들의 세계로 유혹하는 책 [1] | 승완 | 2010.07.20 | 2735 |
1951 | 나에게 일어났던 일 모두가 좋은 일이었다. [5] | 해언 | 2013.11.09 | 2735 |
1950 | 나의 노래 | 김용규 | 2014.07.31 | 2735 |
1949 | 그의 음악 [1] | 구본형 | 2007.12.14 | 2740 |
1948 | 상황을 활용하고 있는가 [2] | 문요한 | 2010.06.09 | 2740 |
1947 | 창문을 사수하라 [2] | 신종윤 | 2009.10.12 | 2744 |
1946 |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 연지원 | 2014.03.03 | 2745 |
1945 | 인생의 안전벨트 [2] | 문요한 | 2010.05.05 | 2746 |
1944 | 자기 정의가 있는 삶 | 김용규 | 2014.10.09 | 2747 |
1943 |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 | 서지희 | 2009.04.22 | 2749 |
1942 | 책을 쓰며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신 [2] | 김용규 | 2010.04.15 | 2750 |
1941 | 삶과 마음을 위한 생활습관 | 승완 | 2014.05.06 | 2755 |
1940 | ‘삶에 답하는 숲’ 이야기를 시작하며 | 김용규 | 2014.04.10 | 2757 |
1939 | 편지19:일상이라는 이름의 하루들 | 이한숙 | 2009.05.12 | 2758 |
1938 | 누가 경영을 재발명할 것인가 [1] | 승완 | 2010.11.30 | 2759 |
1937 | "공부를 선택"한 고3 아들 [3] | 차칸양(양재우) | 2015.02.03 | 27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