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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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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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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1일 03시 05분 등록

맘 먹고 베란다 화단을 정리했습니다. 손대지 않은 사이 무성하게 자란 잡풀들도 다 제거하고, 오랫동안 수북히 쌓인 낙엽도 말끔히 치웠습니다. 햇빛을 향해 무섭게 가지를 뻗은 벤자민과 세콰이어 나무도 알뜰하게 전지를 했습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바깥 풍경이 보입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니 어두웠던 실내가 훤하게 밝아졌습니다.


무미건조한 아파트에 초록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3년 전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화단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참 신경을 많이 썼구나, 할 정도로  화단은 아기자기하고 예뻤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건 예쁜 나무와 꽃들이 아니라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들여야할 노동과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화단까지?'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더구나 내 집도 아닌데 말입니다.  예쁜 꽃과 나무가 싫은 이가 있을까요.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녀석들이 보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화단이 아니어도 일이 너무 많은 나는 말라죽지 않을 정도로만 가끔  물을 주었고 그렇게  세 번의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가 얼마 전에 느닷없이 화단을 정리한 것은 베란다에 조그만 테이블을 내놓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기특한 사심(?) 때문입니다. 고맙게도 한 나절 땀 흘리고 나자 제법 괜찮은 공간이 탄생되었습니다. 

 

안방과 동네 카페에 이어 이제 제 일상의 공간이 세 개로 늘었습니다.  먼저 안방. 적지 않은 월세를 잡아먹는 사무실을 없애고 집 안방을 홈오피스로 바꾸었습니다. 바꾸고 나서는 쾌재를 불렀지만 곧 집안일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제 2공간이 동네 어귀의 카페입니다.  긴장과 편안함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능률이 안오를 때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가끔 노트북을 싸들고 그곳으로 출근합니다. 낮에 책을 읽고 싶을 때 가기도 합니다. 일할 시간에 책 읽는 죄책감을 그곳에서는 덜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의 지정석도 있는 엄연한 나의 공간이지만  자주 가진 못합니다. 손님이 별로 없어도  테이블 회전이 곧 수익인 곳에서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하루종일 있기는 민망합니다. 조앤 롤링이라면 몰라도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

 

두 곳 모두 각기 쓰임이 있고 의미가 있는 공간이지만 이번에 새로 만든 베란다 공간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좁고 소박하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나의 사적인 공간이고, 아침을 잘 맞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부터, 지난달 뉴욕 여행에서 사온 <Autobiography Box, Owner's Manual>을 이용해 자서전을 쓰고 있습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일기를 밥 먹듯이 여겨온 내게 자서전은 또 다른 형태의 일기요 모닝페이지일 뿐입니다. 연대기적 자서전은 꼭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변경연 연구원 지원할 때 20쪽만 써도 되는 Me Story를 46쪽이나 썼습니다. 지원서긴 하지만  인생을 돌아볼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나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는 생각으로 두 주 동안 도서관에 나가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 때는 회한과 연민과 분노로 뒤엉킨 내 안의 감정들을 모닝페이지로 반년 동안 풀어낸 후였습니다.


내 인생을 관통하면서 한 번도 내 손에서 놓지 않은 두 개의 관심사가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그냥 좋아서 읽었고 썼습니다. 독서와 글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거울처럼 비추며 나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요즘은 책을 많이 사지 않습니다. 많이 읽지도 않습니다. 읽기만 하고 ‘살지는 않는’ 허약한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나 고전 한 두 권만 깊이 읽어도 사유하고 행동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생래적으로 복잡한 내가, 단순함을 삶에 들이기 위해서는 본능을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다독’이 도와줄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여행과 ‘여행의 방식’에 더 많이 관심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습니다. 글은 그냥 요리를 돕기 위해 도마 위에 놓인 식칼처럼 우리 삶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입니다. 엄청나게 유용한 도구임에도 사람들은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글이 줄 수 있는 엄청난 수혜를 다 놓치고 맙니다. 마땅히 누려야할 걸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안타깝습니다. 늘 내가 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독려하고픈 글쓰기는 ‘삶을 돕는 글쓰기’입니다. 글이 삶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하는 것이 내 일입니다. 이제는 자서전 쓰기를 실험하려 합니다. 자서전 하면 사람들은 더 부담을 갖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일기쓰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일기 쓰는 것도 어렵다고요? 그럼 저에게 전화하십시오)


내가 지금 활용하는 자서전 박스에는 유용한 도구가 두 가지 들어있습니다. 먼저 자서전을 왜 쓰고자 하는지 의도를 살피게 도와주는 저널 노트입니다. 갱지 풍의 꽤나 질감이 좋은 작은 노트입니다. 가볍고 휴대하기 좋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곳에서든 적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것은, 오래된 기억의 창고를 뒤져서 쓸 만한 것들을 건져내고 이야기에 구조를 붙여 쓰는 글이 하나의 작은 드라마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4 범주의 질문카드다. 단순한 돌아보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게 도와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건 아닙니다. 매뉴얼이 꽤나 실용적이어서 따라하면 짧지만 괜찮은 자서전이 완성됩니다. 제대로 긴 자서전을 써보고 싶은 사람은 이 박스를 첫 단추로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박스가 아니더라도 자서전 쓰기를 돕는 책들은 한국에도 많습니다. 내 책상에도 글쓰기와 자서전 관련 책들이 수북합니다. 천차만별인 것 같지만 그 책들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당신에게 당신이 살아온 날들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은 없다. 스스로 기록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존중하라’ 입니다. 모닝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자서전 쓰기 역시 자신을 깊이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혼자해도 무방하지만 ‘소그룹으로’ 함께 하면 더 좋습니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자서전 박스를 들고 베란다로 갑니다. 따라오는 강아지(&고양이)를 물리고 도어를 닫습니다. 몇 번 호흡을 깊게 한 후 질문 카드 하나를 랜덤으로 뽑습니다. 저널노트를 펼치고 뒷 공백에 질문의 답을 적어 내려갑니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 딸려 나올 때는 묵직한 아픔과 기쁨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제가 자서전을 쓰는 방식은 모닝페이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통스런 즐거움’을 몇 단계 거치고 나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보일 것입니다. 그곳에 가는 방법도 스스로 찾게 될 거구요.

 

내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글쓰기가 어떤 모습인지 얼마 전에 이해인 수녀님 시전집 서문을 읽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존재 자체가 시가 되는 구도자, 그것이 내 글쓰기가 지향하는 종착지입니다.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이 땅의 사람들과 더 친하게 어울려 살면서 더 이상 종이에 시를 쓰진 못하게 되더라도 행복한 사람, 존재 자체로 시가 되는 구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해인 시전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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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혼자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다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소그룹으로 다시 시작,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함께 하는 것의 힘을 다양하게 경험하였습니다. 모닝페이지와 함께 내 인생에 좋은 변화가 숱하게 생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삶을 돕는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우리 어머니들이 식칼 하나로 주방을 평정하던 것처럼 ‘글쓰기 식칼(?)론’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자서전쓰기입니다. 혼자 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사람들과의 역동이 그리워 함께 하려 합니다. 저의 안내를 통해 6월 8일부터 시작할  자서전 쓰기 소그룹 모임에 관심있는 분은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http://cafe.naver.com/morningpage/6452


-변경연 스페인 여름 연수여행이 조기 마감되었습니다. 대기자가 많아 가을(10.5-16)에 한번 더 진행합니다. 가을 여행에서는 ‘삶을 돕는 글쓰기’에 대해 배우며,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로 여행일기를 함께 쓰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여행지에서의 싱싱한 감동을 현장 그대로 노트 속에 담게 될 것입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notice&document_srl=638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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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1 22:10:08 *.65.153.138
글에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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