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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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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일 08시 12분 등록

지난 5년 동안 나의 일상의 중심은 독서였습니다. 책 읽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봐야 1년에 200백 권 남짓이지만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지만, 읽는데 급급해 소화하지 못한 만큼 관념의 벽은 높고 두꺼워졌습니다. 읽은 만큼 글로 정리하지 않고, 삶에 실천하지 않은 탓입니다.


누군가는 이 벽을 부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내게 이 벽은 이제 요새(要塞)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 성찰과 실천을 두 발삼아 걸어야 함에도 한쪽에 지나치게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새가 원래 의도와 달리 현실과 나를 격리시키고 세상과 소통하는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사실 관념의 요새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하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채(城砦) 안에서는 그 실체를 보기 어렵습니다. 밖에서 봐야하고, 그러려면 먼저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내가 여행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멀리 떠나 오래 걷고 싶습니다. 먼 곳에서 내 안을 둘러싼 관념의 성채를 조망하고, 길의 역동성과 길 위의 삶을 통해 허상적인 관념을 비우고자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찾아서>에서 말합니다.


“여행이란 자기가 살고 있는 성(城)을 벗어나는 해방감이 생명이다. 부딪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다면 여행은 자기 생각을 재확인하는 것이 된다.”


먼 곳은 변방(邊方)이고, 먼 길은 변방을 향한 여정입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변방의 본질은 공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변방이라는 공간에서 깨우쳐야 할 것은 ‘변방성(邊方性)’ 혹은 ‘변방 의식’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변방 의식은 세계와 주체에 대한 통찰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방 의식은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脫走) 그 자체이다. 변방성 없이는 성찰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세상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도 그러하고, 집단이든 지역이든 국가나 문명의 경우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를 조감하고 성찰하는 동안에만, 스스로 새로워지고 있는 동안에만 생명을 잃지 않는다. 변화와 소통이 곧 생명의 모습이다.”


혹시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변방성’ 또한 관념적 허상은 아닐까요?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은 직접 ‘변방 여행’을 떠나 공간적 변방에서 변방적 인물을 만나고, 변방의 정신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게 ‘변방성’은 책에서 읽은 것에 불과합니다. 직접 떠나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느껴봐야 합니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에 속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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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저, 변방을 찾아서, 돌베개,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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