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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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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7일 00시 41분 등록

오늘도 늦은 퇴근길. 집으로의 안식을 재촉하는 서울 밤하늘. 잿빛 도시 어둠 헤치고 하얀 달하나 떠있다. 언제나 그러했듯 그곳 소담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음의 기운을 발휘하는 결정체. 신기하게도 하나의 원형임에도 사람들 눈에는 저마다의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끔 한다. 초승달. 반달. 둥근달. 그 형상에 맞게 그들은 갖가지 음률과 문장으로 시를 올려 바쳤고, 하늘의 기운을 관측하고 대비하기도 하였다. 달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처럼 다양한 변신의 위상으로. 외양의 옷차림은 계절과 당일 분위기에 따라 색색이 달라진다. 맑은 날 흐린 날 찌푸린 요일과 감정 상태에 따라 립스틱 색깔과 머리 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그녀들의 이런 모습을 종잡을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다양성의 우월을 논하기도 한다.

태양. 달을 바라보듯 오늘은 무슨 모양일까라고 쳐다보는 이는 없다. 이글이글 양의 속성으로 가득한 물질. 때에 따라 구름이 가리거나 소낙비 내림에 보이질 않지만 형태는 그대로이다. 이런 태양을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남성에 비유하였다. 남성을 태양에 연계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부계사회로써의 자존심이자 멘탈 이었다. 하늘의 태양은 눈에 부셔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 뜨거움으로 남성들은 전쟁을 통해 땅따먹기 싸움의 영토 확장과, 자신의 깃발을 꽃아 승리의 자축연에 취해왔다. 그러했기에 인심 쓰듯 달 하나를 여성에게 주었다.

 

여성은 결혼이라는 신분적 제도로써 남성과 부부사이가 된다. 음과 양의 결합.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결승라인을 헐떡이며 통과한 정자란 녀석과, 태초의 원형을 닮은 양 원시적 위세를 자랑하는 난자와의 착상. 이후 생명체는 자궁이라는 절대 안전지대에서 열 달이라는 기간 자신의 탯줄로 연결되는 매개체로, 영양분과 뿌리 제공자인 모성과의 교감을 나눈다. 감정, 생각, 대화, 기분, 말투, 재능 등 수많은 특질들을 전달받고 공유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틔움. 아내라는 이름은 이제 다른 호칭으로 불림을 받는다.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자식과 함께 일어난 또 하나의 달. 어머니. 그녀는 선택을 받았다. 태양의 신 아폴로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쌍둥이로 호흡하는 것처럼, 두 가지 성을 한 몸에 품을 수 있는 축복됨으로써. 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음에도 일생을 함께 마주하는 운명으로 살아간다.

 

어머니란 대상에게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축약된다.

1. 고맙습니다.

대학원 후배와의 통화.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시간 되시는지. 아이 돌잔치라서 축하해 주세요.”

“벌써 돌이구나. 어때, 아이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낳지 않았을 거예요.”

부모는 자식들의 눈물과 추억의 순간들을 먹고 산다.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애교와 성장의 대견함에 뿌듯함을 느끼며 견딘다. 후배가 아이를 낳고난 다음 가장 큰 발견은, 자신을 똑같이 먹이고 키웠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자신의 핏줄에게 행하듯 당신의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뒤늦은 후회. 늦게나마 뜨거운 인사를 건넨다.

“엄마, 고마워요.”

 

2. 보고 싶습니다.

<수상한 그녀> 영화. 주연 배우 심은경의 열연에 빠져들기 시작할 즈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씬 하나가 등장 하였다. 강가에서 어머니 유해를 뿌리고 있을 때 요절 가수 김정호의 <하얀 나비>라는 노래.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이라는 애절한 가사가 가슴을 몰아세운다. 다른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며 웃고 있을 즈음, 아내에게 들킬세라 눈물 한 움큼 속으로 삼키고 있는 나. 그랬다. 그녀가 생각났다. 떠난 사람은 떠난 게 아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게 아니다. 이별을 하더라도 특정 사물과 환경에서 문득 당사자의 행적들이 퍼 올려 진다. 그랬었지. 그랬었구나. 그러다보면 때론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이, 봄눈 녹듯 시퍼런 라일락 향기로 풀려 나온다.

 

3. 사랑합니다.

사랑. 이성적인 머리가 아닌 체험으로써 겪는 밀담이다. 나의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했기에 나도 한때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로 인식되어, 철모르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했듯 자신의 감정에 인색하였던 그녀. 그런 그녀를 원망도 하고 반항도 했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나 표현하기 어려운 용어인지. 그런 그녀가 사후 처음으로 꿈속에 나타났다. 가난했던 그 시절. 마루에 걸터앉아 새로 구입한 TV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 짓는 모습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을까. 아니면 자식이 걱정 되어서 나타난 걸까. 현실의 영정사진을 돌아보며 되물어 보지만 생전 그녀가 그러했듯 하늘의 달은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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