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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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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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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6일 10시 25분 등록

4월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지인들과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섯 대의 차량에 삼삼오오 나눠 탑승했더니 오가는 길에서도 즐거운 대화가 가득하더군요. 제가 운전한 차에는 이십대 청년 셋이 탔습니다. 안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이 묻더군요. 어떻게 하면 그리 멋지게 살아갈 수 있냐고 말이죠. 쑥쓰럽지만, 제가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누구나 다른 이의 일면만을 볼 뿐이고, 젊음은 종종 사람을 서둘러 판단하기도 하지요. 여튼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인생을 각성 상태로 사는 것 같습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깨어있음의 상태라고 할까요. 저는 인생이 정말 좋고, 한날 한시가 정말 소중하여 시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어요. 치열하게 살려는 마음이 가득한 겁니다. 각박한 삶은 저도 싫습니다. 제가 말하는 치열함이란, 치우침이나 기계적인 열심이 아니라, 일, 관계, 여가, 풍류에게 골고루 시간을 주는 균형 위에서, 순간마다 흠뻑 젖어드는 몰입의 삶을 말합니다."

 

잠시 뒤, 이런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젊음은 속절없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야속합니다. 지난 뒤에야 그것이 젊음이구나 깨닫게 되니까요.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이상은의 <언젠가는> 아세요?" 나는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노래 한 소절을 불렀습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노래를 아는 이도 있었고, 모르는 이도 있었습니다. 제 말과 노래에 감동이나 단상에 빠졌으면 좋으련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더군요. "슬퍼요."

 

아마도 삶의 덧없음을 느낀 듯하여 재빨리 말을 받았습니다. "인생무상이 느껴지죠? 깨닫기도 전에 시간은 훌쩍 지나버리고, 할 일은 많고."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이십대 청춘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지만, 지금이 아닌 여행 이후에서라도 인생무상에 대한 생각 전환이 있기를 기대하며 수원대 이주향 교수와 그의 이모가 나눈 대화를 들려 주었습니다. 종종 인용하는 말이라 술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큰 이모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세요?"
"죽을 때가 됐는데 왜 죽음을 생각 안 해?
나이가 들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풀어져 있는 게 보여.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고 세상이 진짜 아름답단다.
이렇게 꽃 피는 것만 봐도 좋아!"
"이모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이 덧없진 않으세요?"
"덧없긴... 고맙지."

 

무상함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른 국면이 보입니다. 여러 현자들이,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까닭과도 일맥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 중에는 읽을 책이너무 많다며 한탄하거나 질려버리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어차피 인생은 유한하고 세상에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은 많습니다. 우리 몫은 주어진 시간 동안 건강하게 즐기는 일입니다. 읽을 것들, 할 것들, 갈 곳들이 많으니 한 평생 무료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인생이 무한하다고 해서 마냥 즐겁겠습니까. 인생의 유한함과 무상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퍼올릴 수 있습니다. 동서양 두 거장의 입을 빌어 저만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싶네요. 먼저 독서가로서 부족한 시간을 극복하여 유한적 즐거움을 맛보려면, 헤르만 헤세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능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명작들을 자유롭게 직접 선정하여 일과 후 그것에 완전 몰입하여 생각하고 인간들의 정신이 추구한 깊이와 너비를 깨닫고 인류와 공명하는 것이다."

 

인생무상에서 즐거움을 길어올리려면, 포은 정몽주 선생이 좋습니다. 포은 선생은 명나라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닷길에서 조난을 당해 동행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인생의 무상함을 많이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지리산의 저명한 각경대사가 포은 선생을 방문하여 말했습니다. "듣건대 포은은 해난 때 인생무상을 느꼈다고 하는데 출가할 의사는 없는지요?"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전한 포은의 답변은 이러합니다.

 

"사람이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것, 죽음으로써 결연하게 속세를 떠날 수 있는데 출가를 무슨 까닭으로 서두를 필요가 있겠소. 내가 깨달은 것은 인생이 무상하니 세상사를 그만두자는 거이 아니고, 인생이 무상하니 생명의 보전을 감사하게 여기고 생명이 지탱되는 동안 인간사와 세상사를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야겠다는 것이었소." 당시 고려의 왕, 공민왕은 무상가를 부르며 밤늦도록 환락을 다하던 때였습니다. 각경대사는 포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 말했습니다. 인생 무상의 세 가지 다른 결말입니다.

 

"무상도 갖가지라. 어느 무상은 환락으로 통하고,

어느 무상은 속세를 피하여 출가로 통하고,

포은의 무상은 정사(政事)로 통하고."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고,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 특히 그 유한함의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은 무상합니다. 포은은 인생의 덧없음을 세상 외면이나 감정적 회한으로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삶에 정성을 다하리라는 다짐과 깨달음으로 맺었습니다. 헤세도 마찬가지죠. 그 탁월한 작가는 주어진 시간에서 몰입하여 누리기를 강조했습니다. 회환이 많은 성정인 제가 갈 길은 분명합니다. '덧없긴 고밉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삶에 정성을 다하며, 순간마다 몰입하는 인생을 살아야겠지요. 인생의 무상함과 벗하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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