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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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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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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00시 3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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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열세 살이 되자 더 늦기 전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싶은 모양이었습니다. 다른 말 없이 그러마 했지요. 이미 인터넷에서 갖고 싶은 자전거를 골라놓았더군요. 액세서리 몇 개를 포함해 주문을 했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도착했습니다. 월요일 오후, 녀석은 너른 운동장에서 제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녀석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습니다. 아비가 가만히 조금씩 손을 놓는 것도 모르고 홀로 그 불안한 구조의 물체를 굴러가게 하더니, 이윽고 한 시간 만에 100여 미터를 혼자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큰 공부가 어디 있을까. 녀석이 참 대견했습니다.

 

문득 함께 사는 개 바다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그것처럼 그의 첫경험이 서툴긴 했으나, 수컷 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바다를 취하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암컷 바다 역시 배우지 않고도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고 고루 젖을 물리고 청결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해 자식들을 길러냈습니다. 이후 녀석들에게서 앳된 얼굴은 사라졌습니다. 문득 어른이 된 얼굴이었습니다. 행동 역시 그랬습니다. 애교와 아양으로 내게 관심을 끄는 대신 깊은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먼 길 다녀오면 곧장 수백 미터를 뛰어내려와 반겨주던 습관도 차츰 주변 산으로 흩어져 뛰놀다가 살짝살짝 모습을 보이며 나를 반기는 습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주인과의 관계를 잊지 않았으나 차츰 자신들의 피 속에 늑대의 야성이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바다가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고라니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장작을 패다가 녀석이 고라니를 사냥하는 장면 전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집 뒤의 숲에서 바다에게 발각된 고라니는 숲 언저리를 따라 빛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 역시 질풍노도와 같이 추격했습니다. 800미터쯤 내달리던 고라니가 핏빛으로 크게 울더니 일몰의 잔상처럼 소리를 흩어 놓다가 마침내 잠잠해졌습니다. 방문객과 함께 현장에 가보았을 때 바다와 뒤늦게 도착한 의 앞가슴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전리품을 시식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후 녀석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거실의 문 앞을 지키는 시간이 짧아진 것이 그 하나입니다. 대신 숲으로 뛰어다니는 시간이 길어졌지요. 이 변화의 근본 원인은 아마 고라니의 뜨거운 피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변화는 바다위에 군림하던 이 더 이상 그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마 크고 작은 사냥에서 늘 바다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이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딸 녀석과 자전거를 타러 가던 평일 오후 거리와 운동장에서 또래의 아이들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딸 녀석 말이 모두 학원에 가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반면 딸 녀석은 늘 평일 오후를 나의 유년시절처럼 보냅니다. 단 하나의 학원도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 학원 보낼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나는 자연성의 힘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급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 꼴대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다은 사랑과 사냥을 따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딸 녀석 역시 교본을 익혀 자전거 타는 법을 터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 생각은 위험한 것일까요? 그래도 이는 내가 차마 버릴 수 없는 위험한 생각인 걸 어쩌겠습니까!

IP *.229.19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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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10.03.11 01:08:17 *.131.14.42

오래 머물다 갑니다. 이제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학원과 내신관리 이런 주제를 벗어나서 참 좋습니다. 재수기숙학원 앞에서 2주일 토요일마다 기다릴 때, 늦은 귀가로 내가 컴 앞에서 졸고 있을 때, ....그런 날이 많았네요. 이제 돌아서니 군대, 학점, 토익, 취업, 이런 이야기 하고 이제 그대들의 몫이니 그대들의 주제로 돌려줍니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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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19:53 *.229.199.201
험한 주제 벗어나 맞이하는 새로운 주제는 지금님의 삶을 더욱 살아있게 하는 것이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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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10.03.11 06:41:20 *.64.107.166
늘 그랬듯이..오늘도 배웁니다.

저는 학원을 보내면서 아이들을 돈들여 바보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 흐름에서 옆으로 빠져나와서 그러한 위험한 "생각"을 실행할 용기가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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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22:44 *.229.199.201
뭐 바보까지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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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10.03.11 08:21:35 *.153.252.66
따님만큼은 아니지만  저  역시 아이들 유년을  자연 속에 머물게 했지요.

 훌쩍 자라  저의  좋은 친구가 된 지금.

 엄마 정말 감사하다네요. - 바람의 향기와 음악 그리고 숲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에 대해서---

 경기도 산골 마을의 아침 바람이 행복을 더해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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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21:46 *.229.199.201
어? 선생님 이사하셨나요?
소원하시던 시골 학교를 찾아내신건가요?
축하드립니다. 경기도 어디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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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10.03.11 09:40:30 *.93.112.125
꿈을 꾸면서 현실에 길들여지지 않기.
현실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본능을 일깨워주기.
모순일 것 같지만 모순이 아니더군요.

다만, 성급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 꼴대로 살게 되어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행복이란 사실이 정말 중요하더군요.

아름다운 놈의 아름다운 변화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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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24:50 *.229.199.201
모순은 잘 품고 계신거죠?
새가 알을 품듯 품으셔서 꼭 부화시키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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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3.11 10:15:00 *.36.210.228
몽골여행에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단숨에 양의 숨통을 조이며 끊어버려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양잡이를 본 적이 있지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되요.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른 양잡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위에서 눈을 뜬 채 쭉 뻗어버린 고라니 사진을 대하며 그때의 기억을 언뜻 떠올리며 클릭을 하였답니다. 글을 읽기 전 흑백의 사진부터 보며 죽은 놈일까 산 놈일까를 점치기도 하였지요.

억척같고 앙칼진 암컷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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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27:20 *.229.199.201
몽골의 그 양잡이... 예전에 그 이야기 듣는 순간부터
만나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먹는 살아있는 생명들을 취하는 것에 대한 예의를 꼭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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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2010.03.11 13:58:35 *.38.6.131
결국에는 자기의 꼴대로 살게된다는 믿음, 그 믿음을 따르는 행동이 위험하게 만든것은 누구인지,
고쳐야 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부모인지, 아이들인지..
여러가지 생각듭니다.
오늘도 역시 작지만 큰 행복숲에서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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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30:57 *.229.199.201
엊그제 큰 눈이 왔는데, 그래서 여기 응달에는 여태 흰 눈이 쌓여 있는데
하지만 땅이 하늘을 이기는 때가 봄이어서
봄은 오고야 말지.
주한의 새로운 시간을 위한 봄이 오고 있는거야.
그이와 나무 심으러 언제 오실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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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10.03.12 16:30:53 *.175.233.158
원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부질없는 것을 원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이 그대이니 무슨 걱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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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32:02 *.229.199.201
과한 말씀!
요새는 자식이 나를 잡아주는 느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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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21:40:59 *.67.223.107
루비콘 강을 건너 버렸군요.
바다도 산이도....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어라"
새로운 시대의 새 구호인가요?

산아 바다야..아직도 새우깡이 맛있니? 좋아?
담에 사다주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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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32:40 *.229.199.201
예. 새우깡 맛있어요.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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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10.03.17 09:45:45 *.219.6.152
짧지만 인상깊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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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3.19 10:33:17 *.229.199.201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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