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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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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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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9일 00시 19분 등록

 

가만 생각해 보니 마흔 살에 쓰기 시작한 목요편지를 지금 쉰 살에도 쓰고 있습니다. 중간에 일 년, 숲으로 삶의 기반을 옮기기 위해 오두막을 짓던 해를 건너 뛴 것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어느새 꼬박 십년을 지속했습니다. 돌아보면 매주 목요일마다 한 꼭지의 글을 계속 써서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책에서 글귀를 인용하고 그 인용을 기반으로 내 생각이나 사유를 나누는 방식의 글쓰기를 지양했던 나는 매주 나의 것인 경험과 사유를 가져야만 글을 쓸 수 있었고, 그 부분이 가장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주에는 편지에 담고 싶은 경험과 사유가 술술 펼쳐지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주에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책상머리에 앉은 순간까지도 글의 소재가 마땅하게 솟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편지에 담을 나의 것인 경험과 사유를 매주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실한 날은 부실한 날대로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런 날은 편지를 읽을 그대에게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전체 삶에서 일주일을 지웠으면서도 마땅한 성찰의 주제 하나 없이 그 시간을 보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지난해에 나는 새해 봄이 오는 즈음에 맞춰 책 한 권을 내자는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출판사의 편집자는 지난 5년 치의 내 편지를 모두 검토했고 그 검토를 통해 내가 관심을 두고 써온 글의 주제가 몇 개의 영역으로 좁혀진다는 것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출판사는 그 주제를 갈라 출판 기획안을 만든 뒤 내게 보냈는데 그것이 내 흥미를 당겼습니다. 나는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기획으로 간추린 50여 편의 편지 원고들을 한 달 넘게 검토하며 다시 쓰고 매만지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늘 새 책의 서문을 제외한 탈고를 마쳤습니다.

 

지난 글을 본다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함량미달의 사유를 내가 편지로 보냈었다니 하는 생각이 드는 글에서는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드물게 마음에 드는 과거의 글에서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은 도대체 언제 내게로 찾아 온 것일까? 생각 끝에 그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짜로 살 때 찾아왔구나. 어떤 책을 들입다 파고들어서 찾아오기보다 어느 하루를 진짜로 살아낸 날 좋은 글이 내게로 왔구나.’

 

스승님 떠나시고 이곳 마음을 나누는 편지의 필진들이 대거 바뀌던 때에 나도 다른 분이 목요편지를 이어받아 써주시기를 바랐고 지금도 마땅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합한 분이 나서면 그때 나도 목요편지를 쓰는 일을 멈출 계획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여우숲의 홈페이지, ‘여우숲편지는 계속 써야 할 듯합니다. 그래서 진짜로 살아낸 날 좋은 글이 내게로 왔다는 이번의 성찰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글을 쓰며 사는 한 조금이라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진짜로 살아낸 날은 어떤 날이었던가? 책 작업을 위해 죽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진짜로 살아낸 날은 우선 아픈 날이 많았습니다. 흐르는 세상, 살며 마주한 어떤 장면이나 사건, 혹은 나 자신이나 타인, 또는 다른 생명에게서 아픔을 느낀 날들이 바로 진짜로 살아낸 날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픔을 느낀 날 나는 그 고통에 대한 사유를 글의 줄기로 세우고 그것에 대한 연민을 잉크로 삼아 상대적으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진짜로 살아낸 날은 또한 사랑한 날이었습니다. 내 안의 본성과 열망이 향하는 대로 하루를 움직인 날들, 한없이 나약한 나 자신이면서도 또 다른 나약한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겪고 있는 두려움을 함께 나누려 한 날들, 나 역시 몰아쳐오는 세파의 비바람을 피하기 어려운 미물이면서 가녀린 나뭇가지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새를 보면 연대감을 나누려 한 날들, 그렇게 타자에게로 내 가슴을 열어놓은 날들, 그 사랑한 날들에야 나는 덜 부끄러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픈 날이거나 사랑한 날이 내게는 진짜로 살아낸 날이었던 것입니다.

 

쉰 살이 된 내게 나보다 선배인 가까운 사람들이 요사이 더러 고백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온갖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했던 내가 질끈 눈을 감는 인간이 되다니. 스스로 개혁과 진보의 깃발로 나부끼고 싶었던 내가 나도 모르게 침묵을 선택하여 결과적으로 보수의 뒷배가 되어 가다니.’ 그런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표정 없이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나도 다르지 않아요.’라고 그 고백에 공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난 5년의 글을 정리하면서 나는 새로이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 나이 들어가니 조금 순해져야지. 더 너그럽고 부드러운 사람이고 싶어. 그것이 내게 속절없이 더해지는 나이의 미덕이면 좋겠어. 하지만 나는 더 미워하고 더 사랑하며 살 거야!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진짜로 살아내는 날을 더 많이 갖는 것, 이것만은 영원히 지켜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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