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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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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4일 11시 32분 등록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쭉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그럼 저도 지금 아는 것을 나중에 한번 더 알게 돼요?”

그럼.”

근데 그게 달라요?”

당연하지.”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 

 

제가 김애란에게 반한 대목입니다. 2011년 출간당시 31세였던 작가가 어떻게 이런 비밀을 깨우쳤는지 감탄할 뿐입니다. 보통사람이 긴 시간을 들여 겨우 깨우치는 것을 단숨에 깨닫는 사람을 천재라고 할 때 그녀는 천재임에 틀림없어 보이네요.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은 보통사람의 편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신체라도) 20대 중반부터 성인이 된다면, 30, 40대를 살아내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심지어 50, 60대를 지나도 마찬가지구요. 정신과의사 저자로 유명한 이시형박사가 “70세에도 이렇게 건강할 줄 알았다면 인생계획을 다르게 세웠을 것이라며 칠순 넘어 힐링센터를 건립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올해 97세에도 현역인 철학박사 김형석옹은 “65세부터 75세가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하구요.

 

인생이 길어진 덕분에 우리는 몇 번이고 고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범하다 못해 실수투성이인 사람이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좋은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된 거지요.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현실감각보다는 상상력이 발달한 편이라 정말 모르는 것이 많았거든요. 제가 몰랐던 것 중의 대표치는 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돈의 귀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돈을 많게도 하고, 적게도 한다더니 저도 골고루 겪으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한 내 존엄성을 지킬 정도의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해서 노후대책이 돈으로 다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간에 노후를 위해 필요하다고 거론되는 금액이 엄청 부풀려졌다고 생각하구요. 조촐한 글쓰기강의를 하면서도 7년연속 해외여행을 다닌 제가 그 증거입니다.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대비가 문제겠지만) 생활비 자체에 큰 돈이 들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핵심은 소박한 생활비를 가지고도 활기차게 일상을 꾸려가는 에너지와 기술이라고 보는 거지요.

 

예를 들어 도서관 주변에 살면 집이 클 필요가 없습니다. 워낙 가까우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이든 저녁이든 언제고 가볍게 드나들 수 있어 서재를 아웃소싱한 기분입니다. 책에 대해 익숙해질수록 꼭 사고 싶은 책이 줄어들고 있던 차라 어지간한 책은 도서관에서 봐도 충분한데 게다가 희망도서제도가 있어 미리 신청하면 도서관이 나를 위해 책을 사 줍니다. 저는 도서관을 통해 공공성을 피부로 느끼곤 합니다. 2012년 자료로 전국의 도서관이 15000개에 달하는데 도서관에서만 열심히 책을 사주어도 우리 같은 초보저자들이 출간할 기회가 늘어나겠다 싶네요.

 

도서관만으로도 이리 좋은데 그 옆에 산책로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운동감각이 전무한 편이지만 걷기는 잘 합니다. 갈수록 자연이 좋아지구요. 메타세콰이어 아득한 우듬지에 까치가 앉아 있는 것에 혼자 웃고, 어느새 초록물이 느껴지는 나뭇가지에 감탄합니다. 올해는 산책로에 벚꽃이 피면 매일 나와서 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걷다보면 절로 무거운 생각은 가라앉고, 발상의 전환이 됩니다. 글쓰기와 똑같아요. 마음이 가벼워지면 다시 한 번 해 보자는 의지가 불끈 솟습니다. 걸으면서 촉발된 의지를 가지고 도서관에서 공부로 구체화시키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어 갑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산책로가 있는 도서관 옆이 최고의 주거지라고 알고 있네요.

 

결국 최고의 노후대책은 소유하지 않고 향유하기가 아닐지요? 이 지점에서 공공성의 확충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생깁니다. 전무후무한 고령사회에 경제까지 장기 저성장기로 접어들었다니 무시무시한 빙하기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지요. 이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며, 협동으로 해결할 것은 협동하고, 정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놀아도 함께 노는 것은 생존 차원의 문제가 된 듯합니다.

 

저는 지금 컨셉을 팔고 있는 중입니다. 우선 공저라는 형태로 연구와 실험을 일차 거르게 되겠지만 갈수록 깊어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도 진심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유리병 편지를 띄웁니다.

 

 

 

** 글통삶 책쓰기과정 9기를 모집합니다. 개인 책은 물론

나이듦과 재미있는 삶에 대한 공저과정도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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